올 들어서만 열한번째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한달에 두번꼴로 대책이 쏟아지다 보니 내용까지 헷갈린다. 정부는 이번 '5·23 대책'을 내놓으면서 "이번에는 집값이 잡힐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집값 불안 때문에 곤혹스럽기는 언론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시장의 반응은 정부의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 이번 대책으로도 집값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정부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반응이다. 병의 원인을 모르니 처방도 엉뚱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소리까지 들린다. 심지어 부동산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지금이야말로 강남 재건축아파트를 사야할 때"라고 비아냥댄다. 정부도 잘 알다시피 지금의 집값 불안의 원인은 간단하다. 주택 공급이 부족한 상태에서 저금리의 은행돈을 쉽게 쓸 수 있는 시장 여건 때문이다. 이자가 싸다 보니 18평에 사는 사람은 대출을 받아 30평형으로 이사가고 싶어한다. 또 반지하방이나 다세대·다가구주택에 사는 사람들도 은행대출을 받아 아파트로 이사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싼 이잣돈을 바탕으로 좋은 동네로 옮겨가고자 하는 이사수요도 갈수록 늘고 있다. 여기에다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사자'라는 위기의식까지 팽배해지면서 아파트 매입을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아파트는 부족하다. 아파트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좋은 곳에서 내 집을 싸게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줘야 한다. 집값 불안이 지금보다 더 심했던 80년대 후반 정부는 '5대 신도시' 건설계획으로 서민들을 안심시켰다. 많은 서민들은 당시와 같은 효과적인 정부 대책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같은 대책은 좀체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책이 발표된 뒤 집값이 오르기까지 하고 있다. 김포와 파주 신도시 건설계획 발표 이후 서울 강남의 집값은 더 올랐다. 부동산 시장은 영악해졌는데 정책입안자들은 80년대 후반을 답습한 데 따른 대가였다. 이번 '5·23대책'도 이런 맥락에서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재건축아파트의 경우 몸값이 더욱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가수요 차단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값을 올리게 된다는 분석이다. 자재값과 인건비가 오르는데다 시공사가 부담하게 될 금융비용까지 일반분양가에 전가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재건축아파트값은 오를 수밖에 없게 된다.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한 규제도 아쉬운 대목이다. 3백가구 이하만 규제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나홀로' 주상복합아파트 건설로 인한 난개발은 물론 채산성 악화에 따른 분양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이다. 이같은 연유로 부동산업계에서는 정부의 대책이 나올 때마다 한결같이 "답답하다"며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얼마 전 "아파트 주민모임에 나가 보니 큰 평형과 작은 평형에 사는 주민들간 위화감이 대단했다"며 "같은 단지에 여러 평형을 배치토록 하는 평형별 의무건설비율제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인가를 실감했다"고 고백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수험생 자녀를 두다 보니 학부모들이 왜 강남으로 가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까지 했다. 그 자리에서 그들에게 "바로 그게 부동산 시장의 현실"이라고 말해 줬다. 이제 정부 당국자들은 책상에 앉아서 시장을 파악하겠다는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시장은 이렇게 될 것'이라는 섣부른 예상도 삼가야 한다. 적어도 주택정책을 맡고 있는 공무원들만이라도 현장 속으로 들어가 그 곳에서 해법을 찾는 성의를 보여야 할 때다.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