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6박7일간의 미국 방문을 마치고 17일 귀국하면서 3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았다. 대통령의 출국 행사에서는 의장대 사열이 관례화돼 있지만,입국 행사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딱 한번 그런 일이 있기는 했다. 지난 2000년 6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평양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다. 첫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자축하는 의미였다. 이번 노 대통령의 미국 방문도 그에 못지 않게 성공적이었음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했던 모양이다. 노 대통령은 귀국 보고에서 두 가지 점을 들어 이번 미국 방문을 "성공"이라고 자평했다. 우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간 신뢰관계를 재확인하고 북핵 등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안을 찾았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인들을 두루 만나 한국 경제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이끌어냈다는 점도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또다른 "성과",즉 노 대통령의 "대미(對美)시각 변화"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미국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음을 강조했다. 방미 이틀째 "53년전 (6.25동란때)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시작된 "미국 은혜론"은 "뉴욕증권시장에 가보고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것이 있구나 생각했다","그동안은 미국에 대해 머리로 호감을 가졌으나 마음으로 호감을 갖게 됐다"는 "미국 재발견론"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대통령 후보시절 "반미(反美)면 어떠냐","(대통령이 되더라도)밥먹고 사진이나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며 노골적으로 미국에 대해 못마땅한 마음을 드러냈던 그의 "빠른 변신"에 대해서는 공식 수행원조차 "대통령이 너무 달라졌다"고 어리둥절해했을 정도다. 그러나 너무도 진도가 빠른 이번 변신은 그것을 환영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국민들에게 적지않은 당혹감과 의구심을 동시에 안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불과 엿새동안 그렇게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을 정도로 그동안 모르는 게 많았는가 하는 게 첫번째 불안이다. 그동안의 국정운영은 무엇을 기초로 한 것이며 어떤 정보에 기반한 것인가하는 질문도 뒤따라 제기될 법하다. 대통령이 그토록 쉽사리 핵심 맹방에 대한 인식을 바꿀 정도라면 다음에는 어떤 "공부"를 통해 또 갑작스레 정책이 바뀔 것인지도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노 대통령이 만나는 상대에 따라 자주 다른 말을 해왔다는 점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의 어록(語錄) 또한 노 대통령 특유의 "장(場)의 논리"일 뿐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때로는 정책 그 자체보다 그것의 일관성이 더욱 중요할 때가 적지않은 법이다. 노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했다는데도 별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 역시 일관성의 문제 때문이다. 그는 기업지배구조 개혁과 회계투명성 강화 등을 미국에서 재확인한 글로벌 스탠더드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하지만 경제 펀더멘털의 또다른 축(軸)인 노사관계에서 그가 보여온 행보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한참 거리가 멀다. 그의 집권이후 석달도 안되는 사이에 불거진 두산중공업 분규와 철도노조 파업시위,최근의 화물연대 사태 등 세 건의 불법분규에서 그는 노조측 요구에 일방적으로 손을 들어줬다. 기업에 대해서는 한치의 일탈도 용납하지 않는 "법"과 "원칙"을 노조앞에서는 너무도 쉽게 허물어버리는 "노무현식 스탠더드" 앞에서 그가 외치는 "시장 개혁" 구호는 공허할 수 밖에 없다. 또한번 "해외연수"를 다녀와야만 글로벌 스탠더드의 깨달음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