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를 선(善)과 악(惡)으로 단순화한다면 문제풀기는 쉬울 수 있다. 악을 없애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상대를 악으로 몰아붙이면 싸움의 명분도 얻고 승산도 있다. 현재의 산업연수생제도(연수취업제도)는 불법체류자 양산과 인권침해의 원천이기 때문에 악이라고 한다.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려는 이유다. 고용허가제는 선인가. 첫째,불법체류자는 산업연수생제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불법이란 법은 있는데 이를 어기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왜 법을 어기는가. 법을 집행해야 할 당국이 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당국은 불법체류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95년 이래 지금까지 15차례나 불법체류자 출국유예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외국근로자들은 법을 경시하게 됐고,연수취업기간이 끝날 때쯤에는 대부분 직장을 이탈한다. 그래도 불이익이 없다. 불법체류자들이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불법체류 단속을 성토하며 체류기간을 늘려달라고 떼를 쓰는 일도 벌어졌다. 심지어 이라크 파병 반대,고용허가제 도입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 일도 있었다. 누군가가 이들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관'이다. 산업연수생은 15개국에서 도입했다. 불법체류자의 국적을 보면 96개국에 이른다. 이는 불법체류자 발생이 산업연수생제도에만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말해준다. 실제로 불법체류자의 대부분(약 80%)은 현행제도와 관계없이 여러 경로를 통해 입국하여 취업하고 있다. 둘째,인권침해도 현행제도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인권침해사례는 노동현장뿐 아니라 우리사회 곳곳에서 발생한다. 이는 서글픈 현실이고,우리사회의 양식수준과 관습·문화와도 연관돼 있다. 어떤 경우든 인권침해사례가 있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인권침해사례 거의 전부가 불법체류자에게서 발생한다. 인권침해를 산업연수생제도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억지다. 셋째,중소기업은 외국의 값싼 노동력을 도입,'임금착취''노예경영'을 한다고 한다. 국내근로자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외국인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주는 걸 임금착취라고 한다. 이야말로 중소기업을 모독하는 악의적 주장이다. 자국임금보다 수십배나 많은 소득을 벌려고 찾아오는 자들을 노예생활을 하러 왔다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찾아 직장이탈을 하는 판인데,인력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이 외국인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가. 나쁜 사례가 왜 없을까만,과장돼 알려지고 있다는 흔적은 역력하다. 외국인에게 응분의 대우를 해야한다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제도가 외국인 복지대책은 아니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아랑곳 않고 외국인 권익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사회는 지금 경제원리도,생산현장의 사정도 외면하는 분위기다. 외국인력문제는 경제문제다. 경제논리는 실종되고 인권문제,불법체류자 옹호문제로 변질되고 있다. 중소기업을 쓰러뜨려 놓고 무얼 이루자는 것인가. 영세사업장의 우리 근로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지를 한번 살펴 보라.노동부는 급한 일 제쳐두고 외국인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이상하다기보다 한심한 일이다. 고용허가제 환상(幻想)에서 벗어나라.고용허가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우선 불법단속부터 제대로 하라.그동안 말썽이 돼온 송출비리 근절대책을 마련하라.고용허가제에서는 당사국 정부기관이 송출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비리가 없어진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이야말로 관료적 발상의 극치다. 예컨대 정부기관이 송출업무를 담당하는 중국의 경우 비리가 가장 심하지 않은가. 어쨌든 이번 기회에 중소기협중앙회도 송출비리 근절을 위한 획기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고용허가제 아니면 불법체류자를 단속 못하고 인권도 보장 못하는 나라라면 대한민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어떤 제도든 완벽할 수 없고 장단점이 있다. 상황이 바뀌고 풀어야 할 과제가 달라지면 제도개선도 필요하다. 하지만 제도운영을 제대로 못하면서 모든 잘못을 제도 탓으로 돌리면 안된다. 제도 바꾸기보다 제도운영을 제대로 하는 게 먼저다. 제도 탓만 한다면 교과서도 제대로 읽지 않고 참고서만 계속 바꾸면서 성적 안오른다고 불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yoodk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