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으로부터 퇴직금보장과 신분보장 압력이 점점 커졌다. 그러나 사장으로서 약속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가진 전 재산에 근저당을 설정하세요. 퇴직금에 문제가 있으면 그걸 처분하시면 될 겁니다." 윤 사장은 직원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담보로 제안했다. "노사 갈등이 서로에게 너무도 치명적이라는 점을 모두 잘 알고 있었어요. 단 하루라도 생산이 멈추면 일일배송체계가 완전히 무너지고 신선재료는 모두 폐기처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대화와 설득,양보가 우선이었어요." 그런 과정에 노조 내부에서도 회사 살리기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탈퇴하는 노조원이 생겨나고 사무직 노조를 주도했던 직원들은 스스로 짐을 쌌다. 불행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론 '자연스런'구조조정이 된 셈이었다. 1천2백여명이던 직원은 8백여명으로 줄었다. 24명이던 임원은 1명만 남았다. 노사갈등이 사라지자 사원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회사살리기에 나섰다. 자발적으로 무급휴직을 신청하고 상여금까지 반납했다. 98년부터 99년까지 2년동안 사원들이 내놓은 상여금은 9백%나 됐다. 윤 사장은 그 때 사원들이 보여준 애사심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매년 여름이면 전사원들에게 '특별보양식'을 대접하고 있다. 회사가 점차 안정되자 이탈하는 가맹점도 줄어들었다. "어려운 회사사정을 알고 일부 가맹점들은 미수금에 미리 선수금까지 얹어 보내면서 '꼭 다시 서라'고 격려해 주더군요.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윤 사장은 어려움에 처하니까 '적군'과 '아군'이 보였다고 술회했다. 때문에 끝까지 신의를 지켜준 가맹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다른 곳에서 아무리 높은 보증금을 제시하더라도 기존 상권을 보호해 준 것이다. 사내외에서 신뢰가 쌓여갔지만 화의에서 탈출하려면 매출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했다. "매출 증대 방안을 매일 궁리했습니다. 그러다가 BM(베이킹마스터)을 생각하게 됐지요. BM들이 즉석에서 굽는 '오븐 후레시'의 비중을 늘리면 고객들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었죠." 그는 업계 처음으로 1백50여명의 여성 BM들을 매장에 파견했다. BM도입과 함께 서비스개발에도 적극 나섰다. 99년에는 업계 최초로 홈페이지와 연계한 전국 유통망 택배 서비스를 구축해 케이크 배달서비스를 시작했다. 케이크 배달중 온도가 섭씨 0∼5도로 유지되는 '스노팩' 포장도 이 때 도입했다. 전직원들을 에버랜드에 보내 친절서비스 합숙교육을 받도록 하고 고객카드,오케이캐시백도 가장 먼저 도입했다. 택배 서비스이후 케이크 매출이 20%이상 증가했다. "서비스와 마케팅의 중요성은 그 때 깨달았죠.마케팅을 강화한 덕분에 채무의 70%이상을 케이크와 빵을 팔아 번 돈으로 갚았습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마다 큰 힘이 된 것은 역시 업계 처음으로 개발한 생크림 케이크이었다. 매출의 절반은 생크림 케이크에서 나왔다. 그런 효자상품인 생크림 케이크도 하마터면 '독'이 될 뻔한 순간이 있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