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호텔의 대형 연회장이 '땡처리 장(場)'으로 변하고 있다. 경기침체와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의 영향으로 수익에 비상이 걸린 일부 호텔들이 그랜드볼룸이나 컨벤션센터를 땡처리 업자에게 빌려주고 있다. '호텔의 얼굴'로 불리는 연회장에서 이같은 행사가 열리는 것은 외환위기 시절에나 있었던 일이다. 1일 오후 2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 1층 그랜드볼룸. 평소 고급 파티가 주로 열리던 이곳이 땡처리 물건을 사려는 쇼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한쪽엔 '명품, 눈물의 고별전'이란 간판이 붙어 있다. 3백50평 정도인 매장엔 제일모직 LG패션 신원 등 유명 브랜드의 이월상품들이 빼곡하다. 2만원짜리 정장과 1만원짜리 숙녀용 원피스도 즐비하다. 주부 김모씨(42.서울 구의동)는 "호텔에서 물건을 싸게 판다는 전단을 보고 왔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 몰랐다"며 "호텔에서 가격이 싼 물건을 쇼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 행사를 기획한 프라자기획측은 "호텔을 빌려 행사를 열면 상품 이미지가 좋아진다"며 "주변 주민은 물론 호텔측과 우리에게도 득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호텔 내부에선 '이미지 손상'을 우려하는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워커힐호텔 관계자는 "판매된 의류에 하자가 생겨 민원이 발생하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어 그에 따라 호텔 이미지가 떨어질게 뻔하다"고 걱정했다. 같은 시각 서울 남산 자락에 있는 서울힐튼호텔 1층 컨벤션센터에서도 땡처리 시장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7백30여평이나 되는 이 컨벤션센터는 나이키 등 20여개 브랜드의 상품을 싸게 사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국제행사 기업행사 등이 열리던 우아한 평소 분위기는 오간데 없다. 행사장 안은 시끄러운 댄스음악과 함께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의 손박자와 '골라 봐'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판매대 위로 올라가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남대문시장과 똑같다. 나이키 매장에는 20m가 넘게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한 주부는 "10분 이상 기다리고 있다"며 투덜거린다. 행사를 마련한 ㈜나이키곤지암 창고형마트는 임대료로 하루 1천5백여만원을 내기로 하고 4일까지 행사장을 빌렸다. 이 회사의 윤석재 과장은 "싸구려 물건이 아니라 나이키 본사에서 가져온 이월상품"이라며 "정상가격보다 50∼70% 싸게 판다"고 말한다. 무궁화 5개짜리 서울힐튼호텔이 땡처리용으로 컨벤션센터를 빌려준 이유는 워커힐호텔과 같다. 대형 연회장의 공실률이 높아지자 의류 판매업자에게 '문턱'을 낮춘 것이다. 실제로 작년 이맘때만 해도 80∼90% 수준이던 객실과 컨벤션센터 이용률은 최근 50∼60%로 급락했다. 호텔측은 컨벤션센터의 하루 임대료를 정상가(2천2백만원)보다 30%나 할인해 주고 있다. 류시훈.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