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된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자신이 퇴임사에서 했던 말처럼 지난 20여년간 공정거래법 정착에만 매진해온 '공정위의 산 역사'다. 법학박사로서 대학 교재로 널리 쓰이는 신공정거래법과 하도급거래상론을 비롯해 7권의 저서를 낸 대표적인 공정거래법 이론가였다. 공정위원장 시절 대그룹의 부당내부거래 조사와 언론사 불공정거래 조사를 과감히 추진하는 등 개혁의 선봉에 서 있었다. 재경부 장관이 출자총액제한 완화 등 기업규제완화 방침을 발표하면 곧바로 반박성명을 내도록 하는 원칙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접대문화가 공정한 경쟁환경을 만드는데 저해가 된다"며 "나 자신부터 저녁 약속을 거의 만들지 않고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때문에 이 전 위원장이 조사대상인 기업에 압력을 행사해 자신이 다니는 사찰에 시주토록 하고 출장비용으로 2만달러를 받아 챙겼다는 혐의로 구속됐다는 사실은 너무 충격적이다. 재벌개혁의 선봉대 역할을 해온 공정위에서는 수년 전 핵심국장인 독점국장과 경쟁국장이 수뢰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어 놀라움이 한층 더하다. 전임 공정위원장의 구속 소식을 접한 재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보통 수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며 분개했다. 물론 공정위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면서 공정위가 집중적인 로비 대상이 된 것도 사실이다.정책의 종속변수인 기업들은 "돈을 주는게 편해서 준다"고 해명하지만 주는 쪽이든 받는 쪽이든 비판을 면키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도 아닌 개혁 주창자들의 비리라는 점이다. 재계에선 벌써부터 "자기들은 그러면서 무슨 개혁을…"이란 소리가 흘러나온다. 더욱이 개혁을 선도해왔던 청와대 핵심측근마저 기업의 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이런 분위기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한 대학 교수는 "나는 옳기 때문에 상대방만 변하면 된다는 개혁독선이 개혁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전임 공정위원장의 구속이 개혁핵심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일방주의의 위험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성택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