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계 투자펀드인 크레스트증권이 SK그룹 지주회사격인 SK㈜ 주식을 집중 매집함으로써 SK그룹이 외국자본의 표적이 되고 있다. 재계 3위,자산 규모 47조원의 SK그룹을 공격하는 데 투입된 자금이 불과 1천7백억원 정도였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경영권 방어전선(戰線)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크레스트증권은 SK㈜의 지배구조와 우리나라 규제체계의 취약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SK㈜의 의표(意表)를 찔렀다. 우리 기업은 그동안 국내기업에 불리한 차별적 규제로 인해 외국기업과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과다하게 노출되어 왔다. 출자총액제한과,금융회사의 계열사보유지분에 대한 의결권제한 규제가 대표적 사례다. 이 같은 의결권제한은 글로벌 경쟁환경 하에서 외국기업에 반사이익을 안겨주는 '역차별 규제'였지만,그 잠재적 폐해에 대해 사회적 인식이 뒤따르지 못했다. 규제당국과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한 시민단체가 우리 기업의 지배권을 내부지분의 지원을 받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여긴 나머지,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경제력집중 억제라는 명분으로 기업지배권을 제약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지배권과 경영권 방어능력은 동전의 양면이어서 기업지배권 제약은 경영권 방어능력의 저하를 초래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SK㈜사태는 올 것이 오고야만 것이다. SK 회장의 구속으로 워커힐호텔과 SK㈜ 주식 맞교환이 원상 회복됨에 따라 총수의 SK㈜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된 상황에서,더욱이 출자총액제한으로 SK C&C가 보유한 SK㈜ 지분에 대한 의결권이 상당 부분 제한된 상황에서,SK㈜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는 이미 예견된 것이다. 우연히 크레스트증권일 뿐이다. 다행히 SK㈜는 최소한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공정거래법이 외국인지분이 10%를 넘는 기업을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분류하고,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해서는 국내지분의 의결권을 부활시키는 예외규정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레스트증권은 외국인투자 관련 법규정의 틈새를 교묘히 활용해 전선(戰線)을 SK텔레콤으로까지 확대했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외국인이 15% 이상 지분을 보유하면 국내기업도 외국인으로 간주하며,49%를 넘는 외국인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의 통신사업체 장악을 막기 위한 전기통신사업법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현재 SK텔레콤에 대한 외국인지분이 41%이기 때문에,만약 크레스트증권이 SK㈜지분을 15% 보유해 SK㈜가 외국인 주주로 분류되면 SK㈜의 SK텔레콤 지분(21%) 중 최대 8%만 의결권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SK㈜가 보유한 SK텔레콤 지분 13%는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크레스트증권은 지난 14일 현재 SK㈜ 지분을 14.99%로 공시했다. '0.01% 추가 매입' 가능성을 지렛대로 SK㈜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크레스트증권의 모회사인 소버린자산운용은 'SK㈜ 투자에 대한 입장'에서 우호적인 장기투자자로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사업계획 재조정,자본배분의 최적화,기업지배구조개혁 등의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는 유화적인 손짓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IMF시절 SK텔레콤을 공격한 타이거펀드도 SK텔레콤의 지배구조개선을 요구했지만,결국 타이거펀드는 1조원 가까운 차익을 챙기고 철수했기 때문이다. 크레스트증권도 기업가치 제고라는 명분으로 SK텔레콤 주식 등 보유자산을 매각하라는 압력을 넣을 것으로 예측된다. SK㈜의 현금흐름이 좋아져 SK㈜의 기업가치가 오르면,크레스트는 자연히 큰 이득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재벌은 아직도 총수 중심의 불투명한 경영과 지배권 세습,부당내부거래를 통한 불공정경쟁 등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외국자본의 힘을 빌린 재벌개혁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재벌개혁은 재벌의 자율적 변신과 이를 규율하는 우리의 몫이다. 외국자본에 빼앗긴 경영권은 되찾기 어려우며,국익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따라서 기업의 인수합병 등 경영권시장에서 우리 기업을 역차별하는 출자총액제한 등의 규제는 마땅히 정비돼야 한다. dkcho@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