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sjung@sam-woo.co.kr 나는 세 아이를 두었다. 이 아이들과 초등학교 때부터 '위대한 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누가 그토록 위대하기에 자식들과 더불어 자꾸 반복하여 이야기를 한 것인가. 바로 나의 아버님이시다.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가 되시는 어른이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할아버지가 위대한 분이라 강조했더니 한 번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물음이 걸작이다. "아빠 말씀을 들으면 할아버지는 결코 위대한 분속에 끼일 수 없는데 왜 계속 위대하신 분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높은 벼슬도 못하셨고 그렇다고 탁월한 과학자나 학자도 아니시며 또한 재벌 총수도 되지 못하셨는데 무슨 연유에서 그렇게 말씀하는 거냐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의 아버님은 앞서 말한 그런 분들하고는 거리가 먼 평범한 분이셨다. 요즘 말로 민초일 따름이다. 그런데도 나는 어떤 심경으로 아이들을 붙들고 나의 아버님이 위대하다고 고집스럽게 얘기해 준 것인가. 그것은 부모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과 노고의 은혜가 언제나 주마등처럼 뇌리에 스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부모 역할의 충실. 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위대하다는 말로 칭송받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요즘 세계적으로 사회질서가 혼란해지자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가정을 재건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나의 믿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아버님은 생각하면 할수록 위대하고 소중한 분이시다. 아버님은 조실부모하셨다 한다. 16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갖은 고생을 하면서 이일 저일을 하시다가 2차대전 말기인 1944년에 귀국하셨다. 그 후 우리 형제 8남매를 두셨다. 아버님은 2대 독자로 외롭게 자라셔서 그런지 자식에 대한 욕구가 크셨던 것같다. 나는 8남매 중 다섯 번째다. 그 때는 일제시대,태평양전쟁,6.25 등을 거치는 혼란기로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빈궁한 시절이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8남매를 모두 장성하도록 입히고 굶기지 않고 가르치시고 병들지 않게 하셨는지…. 60세가 되어서야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을 다하신 아버님의 생각에 머리 숙여지는 것이다. 이제는 다 자란 아이들도 나의 뜻을 이해해 주어 아버님에 대한 감사를 함께 하고 있다. 공자님은 "그 아들을 알지 못할 때는 먼저 그 아버지를 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며 사회를 건강하게 지키는 밑거름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