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민족의 자존심과 정체성의 상징이다. 전승국 또는 지배국이 패전국이나 속국의 문화재를 가져가는 것도 그런 속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세기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미술관에서 수많은 걸작을 거둬들였고,2차대전 당시 히틀러와 괴링은 '엘른자츠타프'라는 전리품 수집부대까지 조직,렘브란트 다빈치 루벤스 등의 걸작품을 린츠의 지하갱도와 괴링의 저택에 수장했다. 중국의 경우 청(淸)말 서구 열강세력이 밀려 들면서 잃어버린 문화재가 47개국 1백만여건에 이르고,우리나라 역시 일본 미국 프랑스 등 20여국에 7만5천점의 약탈 및 유출문화재가 산재돼 있다고 한다. 2차대전 때 나치가 약탈한 미술품은 반환됐지만 영국이 그리스 파르테논신전에서 가져간 '엘진 마블'은 대영박물관,프랑스가 이집트 룩소르신전에서 옮긴 오벨리스크는 파리 콩코드광장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고 무정부상태가 된 이라크 곳곳에서 문화재 약탈이 자행된다는 소식이다. 북부 모술과 티크리트는 물론 수도 바그다드의 국립박물관까지 송두리째 털려 함무라비법전 서판(書板)과 은(銀)하프 등 17만여점이 사라지거나 훼손됐다는 것이다. 문화재는 한번 사라지면 되찾기 어렵다. 70년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이전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이 체결된데 이어 95년 전쟁으로 인한 약탈ㆍ유실 문화재는 시한 없이 반환해야 한다고 규정한 '약탈ㆍ불법수출 문화재에 관한 협약'(유네스코)이 발효됐지만 당사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쉽지 않다. 우리도 1866년(고종3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극동함대사령관 로즈 제독이 가져간 외규장각(外奎章閣) 도서를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유네스코에서 약탈 문화재의 불법거래를 막고자 이라크 주변국의 문화재 관련당국 및 세관 등에 협조를 요청했다지만 회수 가능성은 미지수일 수밖에 없다. 약탈 현장을 TV로 지켜보던 주미이라크대사가 끝내 눈물을 떨궜거니와 점령군이 아닌 자국민에 의한 문화재 약탈은 전쟁이 민족의 자존심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보여주는 듯해 가슴 아프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