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아 구상에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한다. 우리나라를 거대한 경제대국 일본 중국과 어깨를 겨루는 동북아의 중심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은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같은 꿈(!)은 정책슬로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쯤 과연 이 같은 구상이 실현가능하고 시의적절한지를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실현가능성의 문제다. 세계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반도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으니 로테르담 같은 물류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동북아 물류중심지가 된다는 것은 북중국행 화물이 우리 손을 거쳐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리로 가는 화물이 로테르담항에 하역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하지만 이는 남북철길이 열리고,중국이 항만 개발을 소홀히 해 계속 한국항만에 의존할 것이라는 비현실적 가정 하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시베리아에서 천연가스를 가져와 북한도 주고 국내에 공급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한반도 몇배 거리에 가스관을 깔아야 하는 이 사업은 중국이나 일본이 동참하지 않으면 경제성을 맞추기가 어렵다. 누군가가 건설비를 공동부담하고 가스를 같이 소비해줘야 한다. 하지만 몇년 전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대규모 가스전을 개발한 중국은 파이프라인 건설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금융센터도 멋진 빌딩만 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확고한 금융산업기반과 '깨끗하고 투명하다'는 국제적 이미지가 부각돼야 한다. 연일 터지는 SK글로벌,나라종금 사태와 더불어 우리금융회사의 경쟁력과 완고한 재무관료들의 수준을 생각할 때 이것도 크게 기대할 것이 못된다. 둘째,동북아 중심국가는 바깥 세상을 고려하지 않은,다분히 자기중심적 발상이다. 이미 중국을 지레짐작으로 의식해 동북아 경제중심으로 바꿨다. 일본의 독설가는 과거 '大일본제국'환상처럼 요즘 한국이 '大한민족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냐고 빈정댄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일본열도에 미사일을 겨누는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에 에너지 공급을 의존하려 할지도 의문이다. 더욱이 이라크 전쟁에서 보듯이 에너지를 대외정책의 골격으로 하는 미국의 입장도 살펴야 한다. 과거 유럽·옛소련 가스관 건설을 그렇게 반대하던 미국이,동맹국들이 러시아와 북한에 에너지안보를 의존하는 것을 어떻게 볼까. 셋째,우리의 현 경제상황은 빨라도 다음 정권에서나 성패가 가름될 장밋빛 구상에 매달릴 만큼 한가하지가 않다. 전문가들은 지금을 1997년에 버금가는 위기상황이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경기가 일시 하향국면에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다. 북핵,노사갈등,기업심리위축 등이 대규모 '기업탈출'로 이어져 한국경제가 구조적으로 몰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5년이나 10년 후 외국기업을 끌어들여 한국을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더 급한 것은,당장 이 땅에 있는 우리 기업과 외국인투자기업이 해외로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동북아 경제중심이라는 기치는 높이 쳐들고 있지만 정책의 총론과 각론이 따로 놀고 있다. 최근의 두산중공업 분규,외국인 고용허가제,단선적 재벌개혁 등 손발이 안맞는 정책을 보면,구체적 정책 각론은 오히려 기업을 해외로 내모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동북아 중심국가가 될 수 없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정부가 생각과 방법만 바꾸면 가능하다. 우선 정부와 기업,그리고 노조가 합심하여 기업 하기 좋은 분위기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동북아 아젠다는 세계경제 속에서 우리가 지금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확고한 비교우위는 금융이나 물류보다는 반도체 통신 자동차로 이어지는 제조업과 IT산업이다. 따라서 다국적기업이 우리나라를 동북아 생산거점(HUB)으로 만들도록 해야 한다. 세계의 기업들이 몰려와 생산활동을 하고,그러다 보면 자연히 물류와 금융이 뒤따라 동북아 물류·금융중심지가 될 수 있다. 결론은 우리나라를 일본과 중국사이의 '동북아 중심국가'가 아니라 글로벌경제 속에서 '동북아의 허브'로 만드는 것이다. syahn@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