裵洵勳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 > 미·영 연합군이 바그다드 남부 25㎞까지 진격함으로써 이번 전쟁의 대회전이 임박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 소식으로 미국 증시에서는 다시 단기전의 기대감이 고조되면서 주가·달러 급등,유가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이라크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라크 전쟁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과,미·영 연합군이나 이라크 어느 쪽도 분명한 승자나 패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총을 쏘며 교전하는 전쟁은 끝나겠지만,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기독교문명과 회교문명간의 충돌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더라도 미국은 여전히 대규모 군사적 비용을 지불하면서 미국식 정의를 구현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고,이라크 국민 역시 큰 비용(비금전적 비용이더라도)을 지불하며 서구식 문명에 항거하는 노력을 계속할 것으로 보여진다. 쌍방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정의를 위해 이런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 문제야말로 모든 세계 시민이 참여해 과연 누가 보다 정의로운가에 대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전쟁은 정의(正義)가 문제이지,강자와 약자의 편가르기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입장은 무엇인가? 미국이 유엔헌장을 무시하고 일으킨 전쟁이니 반전운동에 동조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의로운 목적으로 전쟁을 하는 미국 편에 소극적이나마 동참하는 의미에서 파병을 해야 하는가? 또는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세계흐름에 큰 영향을 줄 입장이 못되니 우리 국민들이 잘 살 수 있게 경제적 실리를 추구해야 하는가.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바라는 바가 무엇이고,대통령은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나라의 행정이 효율적으로 되려면 대리인인 대통령이 주인인 '국민의 뜻'을 받들어 권력을 잘 행사해야 한다. 여하튼 올해 말 우리가 느끼게 될 것은 '인류 사회에 정의가 얼마나 구현됐는가'가 아니라,'막대한 비용(직간접 참전비용뿐만 아니라,참전·반전에 관한 정치비용이 더 크다)을 들인 우리 삶이 정신적·경제적으로 얼마나 윤택해졌을까'이다. 특히 우리 소득이 얼마나 향상됐는가를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의 소득은 '경쟁력'이 좌우한다. 경쟁은 반드시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그러나 증가하는 부가가치를 누가 더 많이 배분받는가는 경쟁력의 차이가 결정한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면 우리 경쟁력은 향상될까. 이라크 전쟁 때문에 하락한 주식 값은 얼마나 회복될까? 전후 복구사업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마련해주고,우리의 소득 향상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 국내 기름값은 얼마나 하락할 것인가. 일반 물가는? 전쟁 당사국인 미국의 경제는 다시 고성장으로 돌아설 것인가. 우리의 대미수출은 얼마나 증가할까,후세인 독재정권 아래서 고통받던 이라크 국민들의 인권은 얼마나 회복될 것인가,아랍 테러는 과연 줄어들까,격전지에서 종군하던 기자들은 무사할까? 인간 방패가 되겠다며 자청해 전쟁터에 간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희생하는 것일까. 모두들 대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판에 냉정하게 이해 타산을 따지는 이유는,인류 역사의 수많은 전쟁은 사람들의 막연한 감상에 젖은 생각으로 시작해 참혹한 대가를 치르고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6·25 한국전쟁이 그랬고,1960년대 말 베트남전쟁이 그랬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이겨야 하고,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은 고귀한 생명을 바치고 산화한다. 한국전에,베트남전에 참여한 미군들이 세월이 흐른 후 허탈해 하는 것은,감상적인 생각이 잊혀지고 나면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전쟁의 폐해'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권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하고,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고귀한 행동은 존경을 받아야 인류 사회가 평화롭게 될 수 있다. 그것이 경제 발전이고 인류 복지의 향상이다. 반전 데모와 성명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전후 필연적으로 발생할 많은 일들이 우리의 냉정한 사고를 기다리고 있다. soonhoonbae@kgsm.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