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이 위기에 처했다. 코스닥 장기침체에 따라 회수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조합의 만기 및 대출채권 유동화증권의 자금상환일 도래에 따라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코스닥은 1999년 유례없는 호황을 누린 이후 2000년 초부터 버블붕괴를 우려한 투자자의 시장 이탈로 수급균형이 일시에 깨져 버렸다. 여기에 검찰의 벤처비리 조사가 진행되면서 언제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이 됐다. 결국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벤처기업과 코스닥은 투자자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게 됐다. 벤처캐피털이 살아나기 위해선 코스닥의 건전성과 역동성이 회복돼 제기능을 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상황은 비관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가총액 상위권 기업들이 코스닥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기업이 떠난다면 코스닥 시가총액이 적어도 3분의 1 이상 줄어들고,지수도 급락할 것이다. 이는 다시 코스닥 탈출의 시그널이 되어 이번엔 투자자가 아닌 우량기업이 떠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결국 코스닥이 문을 닫고 거래소에 편입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수도 있다. 코스닥이 문을 닫게 되면 벤처투자 자본의 회수 메커니즘은 기능을 상실하고,벤처캐피털 대부분은 생존불능 상태에 빠진다. 이는 첨단기술 및 신기술 기반 창업기업에 대한 민간 투자가 대폭 줄게 돼 벤처 생태계는 코스닥이 생기기 전인 90년대 전반으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신성장산업 육성의 핵심 수단이 없어지면서 한국의 미래 산업포트폴리오 형성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같은 최악의 사태를 면하려면 정부가 신산업 창업을 위한 자금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이미 경험한 바와 같이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을 야기하는 등 역기능적 요소가 많아 실행에 옮기기 힘들다. 대안으로서 신규사업을 일으키는 데 대기업의 역할을 확대하면,과거 재벌기업의 다각화 메커니즘에 의존하는 결과를 빚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며 새로운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정부는 장단기 정책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먼저 코스닥을 버릴 것인가,살릴 것인가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앞에 언급한 이유들에 의해 코스닥에서 철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면 어떤 방법으로 살릴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정부가 우선 해야 할 일은 코스닥을 살리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는 것이다. 구체 수단으로는 장기 안정자금을 동원해 주식에 대한 수요를 조성한다. 또한 프리코스닥 주식 유동화자금의 규모를 늘려 벤처캐피털의 유동성 위기를 해소시켜야 한다. 장기·안정적 자금이 동원될 수 있는 자금의 원천은 연기금이다. 운용자금 규모가 큰 몇몇 연기금을 중심으로 펀드를 조성해 코스닥 주식을 매입케 하는 것이다. 현재 연기금 중 펀드형태로 되어 있는 자금은 60조원 정도다. 이 가운데 1%인 6천억원으로 코스닥주식을 매입케 하면 1차 시그널이 될 수 있다. 현재 5백억원 정도인 프리코스닥 주식 유동화 펀드도 3천억원 정도로 확대해야 한다. 주가가 바닥 상태이기 때문에 전문펀드매니저들을 활용하면 프라이머리 CBO의 전철은 밟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몇가지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시그널을 보내도 투자자의 외면이 계속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라크전쟁과 북핵문제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아 부동자금의 유입이나 외국인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연기금은 장기펀드의 성격이기 때문에 당분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나,언론에서 비판적으로 나오면 연기금들이 거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이밖에 대기업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출자총액제한제 같은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이를 통해 M&A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관계법을 개정해 벤처캐피털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벤처캐피털이 더 이상 벤처캐피털이 아닐 수 있게 만들 우려가 있다. 여하튼 90년대 전반 상황으로 되돌아 가서는 희망이 없다. hanjh@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