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의 거품이 빠지기 전,주식은 장기투자자들이 선호하는 투자대상이었다. 영국의 경우,연기금과 생명보험사들이 자사자산의 5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세계증시의 약세는 주식투자의 리스크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영국의 한 연기금은 자사소유의 모든 주식을 채권으로 전환했으며,다시는 주식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주식투자 옹호론은 장기적으로 주식이 채권보다 현저히 많은 수익을 낸다는 실증분석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주식이 채권보다 리스크가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과 영국의 역대 시장 자료들을 보면,주식이 채권에 버금가는 수익을 내기까지는 2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기타 주식시장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도 최소 40년,때로는 50년 넘게 주식에 투자해야 그 수익률이 채권수익을 상회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의 평균수명과 투자를 시작하는 연령이 20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50년이라는 세월은 케인스가 남겼던 명언 '먼 훗날 우리는 모두 죽는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주식투자를 포기해야 할 것인가? 특히 경제적·지정학적 위험이 극치에 달한 오늘날에는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흥미로운 것은,상황이 불안정했던 과거에도 주식이 채권보다 더 나은 수익을 실현했다는 사실이다. 공황이나 초인플레이션,심지어는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주식이 채권보다 더 안정적인 역할을 했다. 1차대전이 있었던 1900∼1919년 중 대공황과,2차 대전이 있었던 1930∼1949년 주식수익률은 채권수익률을 능가했다. 양차 대전을 모두 패배한 독일에서는 주식·채권간 수익률 차이가 세계평균보다 훨씬 더 높기도 했다. 전쟁에서의 패배가 때때로 초인플레이션이나 화폐 개혁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정부채권가격을 폭락시키기 때문이다. 평시에 채권이 보장하는 안전성에 대한 대가는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 안전성을 위해 채권투자자들이 감수해야 했던 대가는 낮은 실질수익률이었다. 1900∼2000년 채권이 제공한 실질수익률은 달러로 1.2%에 불과했다. 이렇듯 저조한 수익률로는,특히 세후 수익률을 감안한다면 채권을 부의 축적수단으로 여기기 힘들다. 세계대전과 같은 지정학적 위험을 차치한다면 세계적인 디플레이션과 불황이 오늘날 가장 큰 위협일 것이다. 1930년대만 보면,채권수익률이 주식을 상회했다. 금리가 떨어지고 있는 디플레이션 환경이라면,채권은 분명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다. 일본의 예만 보더라도 세계의 디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현재 저조한 미국채권 금리조차도 더 떨어져 채권투자자들에게 자본이익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세계적 불황은 가능성이 높지 않다. 세계의 지정학적 위험의 감소와 세계경제의 회복이라는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채권금리의 급등으로 채권투자에 낮은 수익률, 심지어 마이너스 수익률을 초래할 수 있다. 극한 상황에 주식이 채권보다 더 안정적인 투자대상일 수 있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배분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단일종목은 저조한 실적이나 기타 스캔들에 의해 단기간에 폭락할 수 있다. 하지만 증시 전반은 이보다 더 안정적이다. 진주만 사태가 일어난 직후,미 증시는 개장 이틀 동안 7.6%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보수적인 투자자들에게는 채권과 주식의 적절한 분산투자가 보다 적합한 선택일 수 있다. 현재의 지정학적 위험이 신속히 해결되고 세계경제가 기대 이상으로 회복한다면,채권금리는 분명히 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포트폴리오 내에서 주식가치도 올라 채권부분의 손실을 상쇄할 것이다. 반대로 상황이 더 악화되고,디플레이션이 세계적으로 가속된다면,주식시장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채권금리도 그럴 것이다. 채권부분의 수익은 최소한 주식의 손실을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주식시장이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면,채권수익이 치솟고 주가가 폭락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