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수출 역군으로 명성을 날리던 종합상사들이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등의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신인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살아있는 기업'으로서는 최대규모라는 1조5천억원대의 대규모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확인된 SK글로벌은 회사의 미래를 점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가뜩이나 경영형편이 좋지 못한 종합상사들은 크게 충격받은 모습이다. SK글로벌은 무역부문의 부진으로 90년대말에는 두 차례(97,99년)나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지난 2001년에는 1천2백2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SK(주)로부터 이관받은 주유소사업과 SK텔레콤의 휴대폰대리점사업 등에서 이익을 냈으나 무역부문의 손실을 보전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최근 경영실적을 발표한 현대종합상사도 3년연속 적자를 기록하면서 지난해말 사실상 자본완전잠식 상태에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에 5백3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데다 2001회계연도에 미반영된 해외사업 부실분 7백84억원을 합쳐 1천6백17억원의 부실 요인이 추가로 발생했다. 2001년말 결산 때 납입자본금 3천6백95억원 중 1천1백9억원밖에 남지 않았었기 때문에 부실 요인을 반영할 경우 지난해말 실제 자본금은 마이너스 5백7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위축되는 무역대행업무 일부 종합상사들이 이처럼 심각한 부실 상태에 빠진 것은 상사 본연의 업무인 무역 기능이 크게 축소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이 펼쳐지던 70,80년대 종합상사들은 광범위한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그룹 계열사들의 수출 창구 역할을 전담하면서 막대한 수수료를 챙겼다. 또 '버터에서 미사일까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손을 대 '종합'상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무역환경의 변화는 종합상사의 입지에 큰 타격을 줬다. 그룹의 계열분리에 따라 계열사들이 자체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수출대행업무가 급감했다. 종합상사들이 우리나라 수출에 기여한 비중은 1998년 51.9%에 달했다가 최근 몇년간 큰 폭으로 낮아지면서 30%선으로 떨어졌다. 쌍용과 효성 대우인터내셔널 등이 지난해 종합상사에 필요한 수출요건을 맞추지 못하자 정부가 인가기준을 낮춰주기도 했다. 효성그룹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효성물산을 (주)효성에 통합시켜 사실상 종합상사 자격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종합상사들의 해외 네트워크도 대폭 줄어들어 전체 종합상사들의 해외 거점수는 지난해 6월 현재 3백1개로 98년에 비해 24%나 축소됐다. 종합상사의 한 관계자는 "수출 마진율이 겨우 0.1∼0.3% 수준에 머물러 제조업의 수십분의 1에 불과하다"며 "수출로는 먹고 살기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또 대부분의 종합상사들이 과거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면서 투자유가증권 보유와 본사 역할을 대행하는 해외 현지법인에 대한 과다한 지급보증을 떠안는 등의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재무상황이 탄탄하지 못한 실정이다. ◆생존을 건 변신 시도 종합상사들은 생존을 위한 변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패가 엇갈리고 있다. LG상사는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 최근 패션유통사업을 강화하는 등 내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전자 화학 등 계열사로부터 받는 대행수출의 마진이 거의 없는데다 해외플랜트 수출 등 위험부담이 큰 사업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물산은 지난 96년 삼성건설과 합친 이후 건설부문의 매출과 이익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또 삼성프라자 분당점을 통해 내수 유통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SK글로벌과 현대종합상사의 경우 이같은 상황 변화에 대한 대응이 늦어 수익원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서 부실이 깊어졌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현대종합상사는 모바일 사업과 스포츠마케팅 사업 등 새로운 수익영역을 찾기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SK글로벌도 내수위주 경영으로 방침을 정하고 에너지ㆍ통신사업 관련 물류시설 확충 및 영업망 확대와 게임사업 진출 등을 추진해 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종합상사들이 최근 적자사업 정리,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과 해외자원개발,벤처 투자 등 수익성 위주로 사업전환을 모색하고 있지만 해외 법인에서 안고 있는 부실 규모가 커 앞으로도 당분간은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