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원칙에 따라야 한다." 12일 새벽 노사 양측이 우여곡절끝에 합의에 도달하면서 두산중공업은 일상으로 되돌아 갔다. 노조원들도 현장으로 복귀했고 출근시간과 점심시간에 맞춰 벌였던 집회도 중단됐다. 지난 1월9일 창원사업장내 보일러 공장옆 냉각탑 앞 공터에서 전 노조간부 배달호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63일 만이다. 이로 인해 촉발된 63일간의 노사분규 과정에서 두산중공업 노사가 협상테이블에 앉아 해결방안을 얘기할 때 항상 먼저 내뱉은 말은 '법과 원칙'이었다. 양측이 이야기하는 표현은 꼭 같았지만 의미는 서로 달랐다. 회사측은 노조의 각종 단체행동을 불법으로 판단한 실정법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반면 노조는 '법'이전에 파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회사측의 드러나지 않은 불법행위를 강조했다. 노사합의로 무용지물이 됐지만 양측이 그동안 제기한 각종 고소고발과 가처분신청은 법에 대한 서로의 인식과 기대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시신에 대한 강제퇴거라는 사법사상 초유의 결정이 내려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회사측은 법원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노조를 압박했다. 노조는 관혼상제라는 사회규범과 도덕의 문제를 하위개념인 법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번 분규의 쟁점이자 사태 발생의 계기가 됐던,노조에 대한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 역시 법 위반의 문제였다. 회사는 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법적' 요구라는 입장이었다. 반면 노조는 '법적' 권리인 단체행동을 제약할 목적으로 회사측이 '헌법'에 보장된 노조원의 생존권을 위협하기 위해 '초법적 수단'을 들고 나왔다는 논리로 회사측에 대항했다. 12일 노동부의 적극적인 중재로 회사측이 한 발 양보하면서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법과 원칙'에 대한 노사 양측의 입장차이는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았다. 신임 노동부 장관이 기치로 내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가 현실화되기까지는 숱한 난제를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의 두산 사태는 너무도 잘 보여주었다. 이심기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