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라구요? 오늘 쓰러진 기업의 어제도 그랬습니다." 지금 당장 흑자를 낸다고 방심하지 말고 앞으로 닥쳐올 경영악화에 대비하라는 뜻에서 모 카드사가 직원들의 책상앞에 붙여놓은 문구다. 지난해 초 이 문구를 본 직원들은 속으로 웃었다. 그 전년도만 해도 카드산업은 연간 2조4천억원이 넘는 흑자를 낼 정도의 '노다지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들어 이 회사는 지난달에만 4백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불과 1년만에 카드산업이 '보물단지'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 순익급감, 연체급증 카드사들은 작년 하반기에 7천9백73억원의 적자를 냈다. 국내 대표적인 '부실산업'이라 불릴만하다. 하지만 '카드업의 과거'는 화려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1조1천억원이 넘는 흑자를 냈다. 특히 2001년에는 2조4천8백70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카드업이 이처럼 '한방에 무너진' 이유는 연체 때문이다. 지난달 카드연체율(1개월 이상)은 11%를 넘어섰다. 이는 현금서비스와 신용구매 등으로 카드를 쓴 뒤 결제대금을 한달이상 갚지 않는 금액이 1백만원당 11만원 꼴이란 얘기다. 특히 금융감독원이 카드사 매출채권의 신용도에 따라 쌓아두는 충당금의 적립 비율을 대폭 상향 조정한 이후 카드사의 적자폭은 더욱 커졌다. 급기야 올 1월에는 모든 카드사가 적자를 냈다. 이대로라면 전체 카드사중 절반 이상은 오는 4월께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적기시정조치'를 받게 된다. 금감원은 연체율 10% 이상이며 적자인 회사에 한해 신규업무진출 제한, 경영진 교체 등과 같은 경영개선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 잠재부실이 더 문제 카드사의 '액면상' 연체율은 11.2%(1월말 현재). 하지만 카드사들이 취급하고 있는 대환대출, 대환현금서비스 등을 감안하면 카드연체는 더욱 심각하다. 대환대출이란 카드사들이 연체율을 낮추기 위해 카드 연체대금을 카드론 등 장기 대출로 바꿔 주는 것. 대환대출이 늘어나면 '장부상 카드 연체율'은 낮출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론 카드사의 부실이 더 늘어난다. 지난해말 현재 LG 삼성 국민 외환 등 9개 전문 카드사의 대환대출 규모는 1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9월의 4조∼5조원 수준에서 불과 3개월 만에 배로 불어난 것. 여기에 카드사들이 공개를 꺼리는 대환현금서비스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15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 카드발 금융위기 오나 카드사들은 지난해 20조7천1백41억원 규모의 ABS(자산담보부증권)를 발행했다. 지난 99년까지만 해도 카드사의 ABS 발행규모는 2천억원대에 그쳤으나 불과 3년만에 ABS 발행규모는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문제는 카드사가 부실화할 경우 이같은 ABS를 인수한 국내외 금융사들도 동반 부실화한다는데 있다. 신용카드 연체가 금융권 전반의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우려되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다. 특히 LG, 삼성, 국민, 외환, 현대카드 등의 부실은 모기업의 경영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