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는 계간 문예지의 시대였다. 대학생 특히 인문과학 전공생 치고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세계의 문학'중 한가지쯤 안끼고 다닌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분례기'(방영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조세희) '순이삼촌'(현기영) '사람의 아들'(이문열)이 실린 것도 이들 잡지였다. 참여와 순수,중도의 거센 논쟁 속에서도 수많은 작가 및 학자들이 이들 문예지를 통해 각기 또렷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놓음으로써 사회의 버팀목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젊은세대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제공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컬러TV의 등장으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순수문학과 상업문학의 경계가 무너지고 문학의 서사성과 사회성이 엄숙주의로 치부되면서 문예지는 설 자리를 잃었다. 여기에 문학 또한 상업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문화산업 논리까지 가세하면서 본격문학은 고사 직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작은커녕 화제작도 없다'는 말은 우리 문단의 사막화 현상을 대변하는 셈이다. 새로 창간된 계간문예지 '파라 21'(편집인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이 반가운 건 이런 까닭이다. '파라(para)'는 '옆에' '넘어' '∼에 대항해'라는 뜻.문예지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문학 외에 다른 예술까지 아우른다는 의도를 담았다고 한다. 97년 봄 창간돼 2002년 겨울호까지 통권 20호를 낸 '21세기 문학'을 완전개편한 것으로 문학다운 문학,삶에 스며드는 문학,성평등적 문학 등을 내걸었다. 창간특집으로 '본격문학의 판단기준' '젠더의 시각으로 읽는 한국문학사 대담'등을 꾸민 것도 '문학의 이름을 빌린 상품' 투성이인 우리 문학판에 문학의 본령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소설가 최윤,시인 김혜순씨 등 2명의 중견 여성문인과 젊은 평론가 박일형 심진경씨 등에게 책임편집을 맡긴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문학은 세상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창이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상황과 가치관을 점검할 수 있다. 견딜 수 없이 가벼운 것들이 판치는 세상에 태어난 '파라21'이 삶과 존재의 의미를 묻는 문예지의 진정한 몫을 다해주기를 기원한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