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가 회사 돈을 유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해 7월께 알았습니다. 그러나 공시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져 자금조달 등에 문제가 생기면 부도가 날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이사 겸 대주주인 최모씨가 지난1년간 1백85억여원의 회사 자금을 썼다고 뒤늦게 공시한 이론테크놀로지.이 회사 관계자는 그동안 겪었던 속앓이를 이렇게 털어놨다. 대주주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시달렸던 기업은 이곳만이 아니다. 인지디스플레이 지엠피 화인썬트로닉스 에프와이디 보성파워텍 등 최대주주에 현금을 대여하고도 최고 2년 가까이 늑장 공시했다. 올들어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되는 기업 중 대주주 자금대여 관련 사항이 절반이 넘고 있다. 이중에는 부도위기에 몰린 기업도 없지 않다. 화인썬트로닉스는 지난 14일 4억원을 막지 못해 1차 부도를 냈다. 이 회사는 지난해 3·4분기까지만 해도 1백81억원의 현금성 자산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벤처기업 대주주들이 이처럼 빗나간 '머니게임'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 코스닥위원회 관계자는 "벤처 붐을 타고 큰 돈을 손에 쥔 벤처사업가들이 업황이 나빠지자 이를 정면으로 극복하기보다는 편법을 동원해 피해나가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대주주 통제시스템이 가동되지 않는 점도 대주주의 직권남용을 부추기고 있다. 회사 매출의 3분의 1에 달하는 거금을 사용하는데 대해 회사측 제동장치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이론테크놀로지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다 그런 것 아니냐"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돈에 함몰된 벤처기업가,허술하기 짝이 없는 내부통제 시스템.이러한 환경에서는 침체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벤처기업의 부활 또한 늦어질 수밖에 없다. 쉽게 들어온 돈은 쉽게 나가는 법이다. 땀으로 이룬 성공일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 어려움을 헤쳐가며 기업 펀더멘털 강화를 위해 머리를 싸매는 벤처기업가가 그리운 시점이다. 김철수 증권부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