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s5244@hanmail.net 설날 고개 넘어 입춘까지 지나선지 날이 포근하고 따뜻해졌다. 겨울 내내 추위를 핑계로 내버려두었던 국화 화분의 마른 가지를 잘라내고 뾰족뾰족 솟아오르는 수선화의 어린 싹에게 흙을 조금 돋워주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한 모양인지 설대목의 맹추위는 벌써 까마득 잊고 봄타령을 늘어놓고 싶어 입과 몸이 근질거린다. 내게 올해 봄은 좀 이르게 왔다. 그러니까 구두를 신은 그를 보았을 때,한겨울이긴 했지만 이미 내게 봄은 와 있었다. 그러니 서둘러 봄타령을 좀 해도 좋으리라. 지하철 역 앞에 차를 잠시 세우고 있을 때 그가 계단 입구에 앉아 쉬고 있었고,단박에 그를 알아본 나는 재빨리 그의 발부터 살폈다. 울퉁불퉁한 그의 발을 감싸고 있는 것은 분명 구두였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가죽으로 만든 그의 구두를 확인하자 나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갑자기 사위가 환해지면서 눈이 부셨다.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 사이 그가 일어나서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나는 고개를 내밀고 한참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게 봄이 온 것은 그때였다. 설 대목 추위는 내게 새움이 돋는 것을 시기하는 꽃샘추위였다. 내가 처음 그를 본 것은 몇 년 전이었다. 동네 어귀에서,지하철역에서,또는 조금 더 멀리서 그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여름이거나 겨울이거나 신발 없이 다니던 그. 제정신을 놓아버려서도 아니고,튀고 싶어 일부러 맨발로 다니는 괴짜도 아닌 그의 발은 기형이었다. 시중에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신발이 나와 있지만 그의 발에 맞는 신발은 쉽게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의 발은 그만큼 정도가 심했다. 내가 본 것은 몇 년이지만,서른은 넉넉히 넘겼지 싶은 그는 이제까지 발에 맞는,아니면 적어도 발바닥을 받쳐줄 어떤 신발도 신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추울 때 따뜻하게 발을 감싸주고,비 내릴 때 양말을 젖지 않게 해 줄 한 켤레 구두를 가지기 위해 그가 기다린 시간을 생각하면 지난 겨울은 참으로 짧았다. 못이며 유리조각이며 각종 오물과 먼지가 범벅이 된 길을 묵묵히 걸어온 그에게 한 켤레 구두가 희망이었다면,내가 가진 세속적인 희망은 너무나 가증스러운 것들이었다. 그렇게 파렴치한 내게 그는 서둘러 봄까지 데려다 놓았다. 그러고 보니 참 부끄러운 봄타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