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업계는 지난해 톡톡한 시련을 맛봐야 했다. 지난해초부터 공급과잉으로 우유값은 속절없이 떨어졌고 이로 인해 낙농가들의 살림살이도 급속하게 위축됐다. 이런 상황에서 낙농가들은 감산정책까지 받아들여야 했다. 정부의 강력한 요구로 생산한 우유를 폐기 처분하거나 값싸게 공급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업계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10월말에는 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전국낙농인대회를 갖고 낙농진흥회가 정부가 원유 공급과잉 방지책으로 도입한 잉여우유 차등가격제를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국내 최대 우유제품 생산 협동조합인 서울우유도 정부 시책에 불만을 토로하며 즉각 농림부 산하 낙농진흥회를 탈퇴했다. 이로 인해 한때 70% 수준까지 도달했던 집유체계 일원화가 또다시 무산되는 등 적지 않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만성적인 공급 과잉 =낙농가들이 사육 젖소수를 늘림에 따라 우유공급량도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소비량은 늘기는 커녕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1~10월 국내 원유생산량은 2백13만3천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8% 증가했다. 반면 우유 소비량은 1백39만4천t으로 오히려 4.3%나 줄었다. 특히 국내 원유의 주된 소비기반인 흰 우유는 1백14만2천t으로 무려 7.6%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낙농 선진국들처럼 국내 우유소비도 정체 시점에 도달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농협의 진환웅 낙농팀장은 "유제품 총소비량은 최근 5년간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국산원유를 쓰는 흰우유의 경우 지난해 소비량이 다소 감소하는 등 정체현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 팀장은 "지난해부터 채식주의 붐이 일기 시작한데다가 쌀음료 등 대체 음료시장도 급속히 팽창해 국내 우유시장의 장래를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장에 순응하는 구조조정 =농림부는 선진국 사례 등에 비춰 앞으로 국내 우유소비량은 더욱 더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같은 전망을 토대로 가격보장 등 무리한 지원책을 쓰기보다는 공급량을 줄이고 시장에 순응하는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 4월 한차례에 걸쳐 젖소 2만4천마리를 대상으로 도태사업을 실시한데 이어 11월에는 남아도는 원유에 대해 차등 가격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차등가격제는 낙농가가 낙농진흥회에 평소 납유하는 생산량 가운데 20%를 잉여우유로 보고 여기에 대해선 정상 수매가보다 낮은 가격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농림부 김달중 축산국장은 "수입 자유화 이후 외국의 유명 유가공 상품들이 밀어닥쳐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지나친 보호는 오히려 낙농가들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없앨수 있다"며 "지난해 차등 가격제를 도입한 뒤 느린 속도지만 우유 공급량 증가율이 낮아지는 등 낙농업계도 시장원리에 한층 접근하며 경쟁력을 스스로 향상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우유 더 먹기' 등 소비촉진운동도 범국민적으로 전개해 나갈 방침이다. 지난해 월드컵때 각 구장에 우유 무료시음회를 실시해 좋은 반응을 얻은 농림부는 정부 부처 등에 회의때 음료수를 우유로 대체토록 협조 공문을 보냈다. 또 농촌지역과 사회복지시설에 전지분유를 무상 공급하고 초.중.고교에 대한 우유 급식사업도 더욱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