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둘째주 목요일 핀란드 과학기술정책위원회(STPC) 전체회의가 헬싱키에서 열렸다. STPC는 1년에 4번씩 열리는 국가 최대 규모 회의. 지난해 마지막으로 열린 이날 회의엔 의장인 파보 리보텐 총리를 비롯 재정부 교육부 무역산업위 등의 장관과 기업 노동계 대학의 대표 등 24명이 참석했다. 회의 주제는 'Future competitiveness is decided today'(미래 경쟁력은 오늘 결정된다). 핀란드는 이 자리에서 'Technology program'을 확대, 추진키로 확정했다. STPC는 올 한햇동안 이 프로그램에 15억 유로를 투입키로 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2000년부터 정부가 주도해온 기술혁신 정책. 정부가 투자비의 절반을 지원하며 이 프로그램엔 2천여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핀란드에서 만이 아니다. 기술패권을 잡기 위해 국가가 앞다퉈 과학기술 혁신전략을 새롭게 짜는 등 큰 그림그리기에 나서고 있다. 과학기술이 글로벌 시대의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변수로 등장하면서 과학기술 정책의 패러다임 또한 민관 분담 체제에서 국가 주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 국가가 과학기술을 주도한다 =아일랜드는 IT산업 클러스터인 '디지털 허브 프로젝트'를 출범시키고 기업 및 인재유치에 나서고 있다. 2010년까지 아일랜드를 IT분야 최고 클러스터로 만든다는 목표다. 투자개발청(IDA)과 엔터프라이즈 아일랜드가 공동으로 허브 조성에 나서고 있다. 페갈 마리난 디지털허브 마케팅 이사는 "지난 2000년 수도인 더블린에 미국 MIT대학의 미디어랩 유럽센터를 유치했다"며 "디지털허브가 조성되면 강력한 시너지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과학기술 예산안을 만들어 올리면 의회가 그 규모를 오히려 늘려준다. 기초과학 투자를 전담하는 국립과학재단(NSF)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설립 운영하고 있다. 정부는 NSF 예산을 5년안에 현재의 3배로 늘려줄 계획이다. 마이런 유만 NSF 수석자문관은 "NSF에서 펀딩을 받으면 거의 성공을 보장받는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통일후 중앙행정기관들을 베를린으로 옮겼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맡고 있는 교육연구부는 옛 서독의 수도인 본에 그대로 남아 있다. 과학기술만큼은 정치적 이유나 명분으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과학기술로 또한번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교육연구부는 올 과학기술 예산을 지난해보다 2.5%나 늘렸다. 올 재정적자가 GDP대비 3.7%에 이를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투자를 오히려 늘린 것이다. 일본도 고이즈미 개혁의 하나로 '과학기술 창조 입국'을 내걸고 앞으로 50년간 노벨상 수상자 30명을 배출하기로 했다. 또한 과학기술처를 교육과학부로 재편, 대학개혁에 나섰다. 중국도 '과교중흥'(科敎中興)을 국가 과제로 내걸고 기초과학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해외 화교 과학자여 중국으로 돌아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화교과학자들에게 이중국적과 거주이전을 허용해 주기로 했다. ◆ 과학기술도 블록화한다 =유럽공동체(EU)는 최근 브뤼셀에서 올해부터 5년간 실시할 제6차 연구개발 기본프로그램을 확정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지난 5차 프로그램보다 무려 17%나 증가한 1백75억유로(약 21조원)가 투입됐다. EU는 이 과정에서 각국의 연구개발비를 국가 GDP 예산의 3%로 끌어올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기술공동체로 나가려는 시도인 것이다. 유럽의회 연구개발위원 필립 부스킨씨는 "유럽이 과학기술에 투자를 게을리해 결국 미국에게 세계 패권을 내주고 말았다"며 "유럽이 한데 뭉쳐 연구개발 투자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나라간 공동 프로그램도 강화되고 있다. 영국 독일 네덜란드는 공동으로 촉매 연구에 나서고 있다. 이 연구를 주관하고 있는 레네 하게스테인씨는 "촉매 연구는 기초과학에서 부터 산업응용분야에 이르는 모든 부문과 관련돼 있다"며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대형 연구거점단지를 구축한다 =기술강국들은 클러스터(산업집적단지) 허브구축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핀란드의 경쟁력은 울루대학을 중심으로 한 울루단지로 부터 나온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독일도 아헨공대를 중심으로 한 클러스터형태의 아헨공단을 구축, 가동하고 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샌디에이고와 메릴랜드의 바이오 거점, 텍사스의 정보기술(IT) 거점 등도 대표적인 클러스트로 꼽힌다. 인도에서도 방갈로르에 IT 거점을 만들고 해외기업 연구소 유치에 뛰어들었다. 중국의 중관춘의 경우 칭화대 베이징대 등 대학과 기업간 산.학.연체제 등을 바탕으로 동북아의 실리콘밸리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오춘호 기자 strong-korea@hankyung.com [ 협찬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