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D.Erasmus 1466∼1536)는 대표작 '우신예찬'(愚神禮讚ㆍ Encomium Moriae)을 통해 어리석음이 없다면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위해 애쓰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어떻게든 본성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하는데 이는 우매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는 어리석음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전쟁과 파괴의 열망,황금에 대한 갈망,수치스러운 치정,신학자들의 공허한 논리싸움,성직자의 위선 등을 일으키고,다른 하나는 인간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고통과 걱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영원한 것을 향해 날아오르고자 하는 환상을 부른다는 주장이다. 두번째 우신이 만들어내는 각종 환상 덕에 창작이 이뤄지고 학문이 발전하며 경건한 마음과 희생정신이 생긴다는 것이다. 작가는 명예의 유혹과 불멸성이라는 도깨비불에의 도움 없이 창작에 매달릴 수 없고,군인은 자기 망상에 빠지지 않은 채 용감할 수 없다는 논리다. 약은 사람은 모든 싸움에서 냉정하게 도망치며 눈앞의 이득을 얻기 위한 일 외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취하기도 힘들고 따분하며 극소수 사람에게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창작이나 학문 따위엔 매달리거나 속인들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일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은 모두 우신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또 행복이란 자기 자신에서 빠져나올수록,남과 나눠 가질수록 커지는 것인데 이 또한 어리석어야 다시 말해 '넋이 빠져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천주교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가 신년 제언으로 '우행예찬'을 내놨다고 한다. '새해엔 우리 모두 바보가 됩시다'라는 글을 통해 "다 똑똑해서 자기 이익만 챙기면 얼굴은 살기 등등해지고 웃음과 여유는 사라진다"며 쓰레기를 줍거나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물질과 시간을 할애하는 게 바보처럼 보여도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는 것이다. 각자 어리석어 보이는 일에 앞장서면 세상은 분명 더 따뜻해질 것이다. 컴퓨터의 능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인간과 겨룰 수 없는 건 사람이 지닌 '웃음과 꿈,그리고 어리석음'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