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yh@ksf.or.kr 새해 첫날 아내와 더불어 관악산에 올랐다. 정상의 추위는 매서웠지만 새출발을 다짐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멀리로는 북한산,그리고 눈밑의 서울을 내려다 보며 모처럼 인생길을 새겨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내 가슴을 가장 강하게 메워온 생각은 일찍이 피천득 선생이 쓴 유명한 수필의 한구절이었다. "아무도 미워하지 말고 몇몇 사람을 끔찍히 사랑하며 살고 싶다.그리고 점잖게 늙어가고 싶다." 젊어서부터 이 말을 좋아해 왔건만,막상 그렇게 살지 못한 내자신이 부끄럽다. 새해엔 가족과 주변의 뜻맞는 사람들에게 보다 뜨거운 내 마음을 담뿍 쏟으며 살리라. 지난날 근거없이 나를 모함했던 사람들,내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준 사람들,일은 하지 않고 불화만 조장하는 직원들….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속의 독소를 말끔히 씻어내리라. '차가운 머리,뜨거운 가슴.' 경제학자 마셜의 이 명언은 내가 한때 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 학생들을 향해 즐겨했던 이야기다. 하지만 이 말은 나이들어 가는 나자신에게로 다가오는 엄중한 경구임을 절감한다. 젊은 시절 새로운 지식에 대해 목타던 그 갈증,무엇인가를 향해 불탔던 열정도 차츰 식어가는 것같아 안타깝다. 새해엔 되도록 많은 시간을 내 좋은 책들과 더불어 '사색과 철학'함으로써 무뎌져 가는 의지를 가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가치 있는 인생목표를 새삼 확인하고 열정을 다시 불지펴 새빨간 숯불처럼 완전연소되고 싶다.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들이 한 둘이 아니구나. 이제 많이 늦었지만 새해엔 남들에 대한 인정과 칭찬에 인색하지 말아야겠다. 능력이 있어 훌륭한 업적을 쌓은 분들,마음을 올바르게 쓰며 정도를 걷는 사람들,불우한 이웃을 위해 선행에 힘쓰는 사람들,주어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직원들…. 그들 모두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마음껏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 중에서 탁월하신 많은 분들에게 머리 숙여 존경하고 사표로 모시면서 진정 겸허하게 살고 싶다. 새해엔 아내와 더불어 산행을 열심히 하리라. 마음 편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때묻은 나의 영혼을 정화하리라. 그리고 점잖게 늙어가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