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엔 고령의 어머님이 살고 있다. 80의 나이를 훌쩍 넘기는 동안 태어난 곳을 한번도 떠난 적 없이 한곳에서 농사일에만 골몰해 왔다. 당신의 땅에서보다 척박한 남의 땅 농사를 위해 더 많은 품앗이를 해온 분이기도 하다. 지금은 한 몸 운신조차 힘들지만,젊은 시절엔 콩밭 고랑에 들어서면 물오리 헤엄치듯 사래 긴 밭의 김을 단숨에 매고 벌떡 일어서곤 했다. 길거리에서 소똥이나 개똥을 보면 주워다 거름더미에 보태온 알뜰한 농사꾼이었다. 역시 평생 농사만 짓다가 지금은 중풍으로 자리보전하고 있는 외삼촌이 계시다. 그 분께서 건강하던 10여년 전의 일이다. 시골로 내려간 김에 찾아 뵙고 세상 얘기를 나누는 중에 몹시 못마땅해 하신 대목이 있었다. 도회지에서 내로라하고 살던 사람들이 사업이나 직장에서 고통을 겪거나 좌절할 때 입버릇처럼 '시골로 내려가 농사나 짓겠다'는 식언을 별 생각 없이 한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굴욕감에서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이라 하더라도 듣기에 민망하고 거북하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이 정말 그런 처지가 됐을 때 시골에 내려 온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한다. 70 평생을 오직 농사에 매달려 살아오신 그 분의 말씀으로선 '농사보다 어려운 일도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데,그런 말들은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 같아 두렵다는 것이었다. 한해 농사를 시작해 노동력 수습에 어려움을 겪지 않고,씨앗 선택이 적중했으며,그 해의 기후조차 순조로워 풍년이 넝쿨째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단 하룻밤 사이에 다 지은 농사를 망친 사례를 수 없이 겪었다는 것이다. 씨앗을 뿌린 뒤 그것을 길러 가을걷이해 곳간에다 쌓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돌발사태에 대비하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것이 바로 농사일이라는 말이었다. 더욱이 요사이는 곳간에 쌓아둔 곡식가마를 몽땅 도난 당하는 사태까지 빈발,그 곡식이 음식이 되어 뱃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노심초사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분들이 노쇠한 몸을 가까스로 이끌며 지금의 농촌을 지키고 있다. 흔히 농촌에서 젖먹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지 오래됐다는 말을 한다. 심지어 시골 장터를 찾아가 봐도 젖먹이를 업은 젊은 아낙네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목청 굵은 젊은 장사꾼의 호객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장터에 모인 노인들은 농약중독 피부병 관절통 신경통 화병 등이 이중 삼중으로 들어 운신이 임의롭지 못해 계단 있는 건물 한 두층조차 속시원하게 오르내리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TV 광고를 보면,시골 계시는 늙으신 부모님들이 도회지에 사는 혈육들에게 가전제품이나 보일러 같은 것을 사 보내 달라고 하소연하는 장면이 있다. 현실은 과연 그 광고대로일까. 아니 그 반대다. 대부분 반려자를 잃고 외톨이가 되어 집을 지키고 있는 그 분들은 명절이나 방학 때 도회지에 살고 있는 혈육들의 방문을 받는다. 노인들은 낟알을 털 때부터 내심 보내줄 곳과 몫을 정해 정성껏 갈무리해 두었던 잡곡과 열매와 채소들을 돌아가는 혈육들에게 건네준다. 자신들은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몸에 좋다는 열매나 호박 한개조차 소중하게 갈무리했다가 돌아가는 자식들의 승용차에 실어준다. 또 혈육들을 방문하기 위해 도회에 당도한 노인들은 양손에 들고 머리에 이고 혹은 끌면서 버스 정류장을 나서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지금도 산골마을을 찾아가 보면,비워두고 떠난 빈집들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나머지 쇠락한 농가들은 그런 분들이 조마조마하게 지켜가고 있다. 세상 인심 또한 물을 마시면서도 그 우물을 파준 사람의 노고를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이 분들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과연 누가 그 자리를 채워줄 것인지 암담하다. 도회 구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구는 모두 농촌 출신들이다. 이들 모두가 속내로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농촌이 풍요롭고 정감 있는 곳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지만,자신은 그 곳으로 돌아가 정착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피폐한 농촌이 풍요로운 고장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요원한 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젖먹이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예사로 들을 수 있었던 지난 날의 농촌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