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제도를 사용하는 모든 선진국은 소비자들의 경제적 선택을 보다 효율화하기 위해 공정거래제도를 운영한다. 담합이나 불법거래 또는 과대 광고 등 독과점업체들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의해 소비자들이 입게 될지도 모를 불이익을 차단하자는 의도에서 도입된 제도다. 국민들의 정치적 선택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발생한다. 몇 개의 정파가 그들의 정치적 이념과 정책을 바로 알리기 보다는 독과점적 정치권력을 행사하거나,편협한 지역주의에 의해 권력배분을 흥정하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발전한 선진국에서는 이런 문제를 안정적으로 확립된 정당제도를 통해 해결해 간다. 정당제도는 왜 필요한가? 만일 정당제도가 없다면 우리는 선거철마다 후보들의 이념이나 정책적 성향을 파악키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귀찮은 사람들은 자기 지역 출신에게 무조건 표를 주거나,아니면 기권해 버릴 것이다. 정당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정당의 이름만 보고서도 후보자의 이념과 정책 성향을 알게 하고,또 그 정당의 정치적 공과에 대한 평가에 따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다시 말해 적은 거래비용으로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자는데 그 존재 이유가 있다. 정당제도가 안정적으로 확립될 때만이 유권자들이 정확한 정보에 의해 그들의 정치적 욕구를 제대로 표출해 낼 수 있게 된다.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도 정당정치체제의 확립에 의해서만 타파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선은 정당정치체제의 확립과 지역주의 타파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정치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호남지역에 기반을 둔 민주당이 영남지역 출신 인사를 대통령 후보로 선택했다는 점 자체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와 달리 정당간의 이념과 정책이 보다 차별화됐다는 점도 긍정적인 발전이다. 한나라당의 후보가 출신지역인 충청지역에서 오히려 패배한 것은 우리 유권자들이 지역주의를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증거라 할 것이다. 물론 호남지역에서 민주당 후보가 95%의 몰표를 받았다는 사실은 분명 낡은 정치의 잔재이며,'낡은 정치 타파'를 부르짖은 대통령 당선자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자기 당의 이념과 정책을 가장 극명하게 표출한 민주노동당은 정당정치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이에 비해 이유야 어떻든 현 집권당인 민주당이 현 정권과의 관계 단절을 운운한 것과,임기가 끝나기 전 현직 대통령이 소속정당을 탈당하는 일은 정당정치의 원리에 맞지않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다 더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한 것은,이념과 정책에서 큰 차이를 보인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후보단일화 과정이다. 다행히 선거 바로 직전 두 당의 공조는 깨졌지만,만일 공조가 지속됐다면 새 정권의 정책적 방향이 어떻게 구성될지 국민들은 큰 의문을 갖게 됐을 것이다. 선거철마다 경선결과에 불복하거나,정당의 이념과 정책에 관계없이 이합집산을 이루는 일은 더 이상 용납돼선 안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보다 크게 부각된 '미디어 선거전'은 정치적 선택에서의 거래비용을 절감함으로써 우리의 정치발전에 기여한 또 다른 긍정적 변화로 평가된다. TV 토론과 홍보,인터넷에 의한 정보의 전달은 이제 우리 사회의 선거에서 현수막과 벽보,그리고 막대한 시간과 돈이 소요되는 대중동원 형식의 선거운동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아직 익명성을 남용하는 사이버 폭력이라는 문제가 남아 있으나,새로운 미디어들을 통해 정당의 정책을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일반 대중에게 전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 선거전이 정당정치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미디어의 장점을 잘 활용한 정당이 이번 대선에서 전략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음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경제에서의 공정거래제도가 소비자들의 효율적인 선택권을 보장해주는 것처럼,이제 정치에서도 유권자들이 정치적 선택권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정치적 이념과 정책이 선거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출될 수 있게 하는 정당체제를 만드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치개혁의 핵심이 돼야 한다. ysle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