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어느 기업체에서 '문명의 비교'에 대해 강의했다. 지구상의 문명은 동양(또는 유교)과 서양(기독교)의 문명 이외에도 인도와 이슬람 문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지금은 사라진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들도 떠올리게 된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상의 인류문명 21개를 골라 그것들의 흥망성쇠를 '도전과 응전'이란 말로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강의를 준비하면서 떠오른 것은 '왜 서양만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던 것일까'라는 의문이었다. 세계의 여러 문명 가운데 서양만이 과학기술을 발전시켰고,그로 인한 물질적 발달은 압도적 힘을 축적시켜 주었고,그 힘으로 서양은 세계를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서양에서 먼저 과학이 발달한 배경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 시대부터 서양에서는 논리적 사고가 발달했고,17세기 이후에는 실험을 통한 자연의 이해 방법이 발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리적 사고'와 '실험적 방법', 이 두 가지가 서양에서 과학을 발달시켜 주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설명도 수긍할 점이 없지 않다. 또 그밖에도 사회구조의 차이 등을 들어 이 문제를 설명한 학자들도 있지만,나는 다른 각도에서 서양 과학과 서양 문명의 발달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중해를 둘러싸고 여러 민족이 힘을 겨루며 전개된 서양문명은 '갈등을 극대화'하는 문명이었던데 비해 중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동양문명은 '갈등을 극소화'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 갈등의 해결 방식 차이가 서양을 앞서게 한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전개된 서양문명은 예부터 여러 민족 사이의 극심한 갈등이 그 기조를 이룬다. 그들 문명의 중심인 지중해는 험한 바다가 아니라 교통을 편하게 해주어 여러 민족 사이의 갈등을 극대화시켰다. 카르타고 이집트 그리스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한족(漢族)이 주도권을 잡고 중원을 차지한 채 민족 사이의 갈등이 비교적 심하지 않았다. 잔잔한 내해(內海) 지중해가 교통을 편하게 해 민족 사이의 갈등을 극대화시킨 반면,잔잔하지 않은 황해(黃海)가 그런 갈등을 줄여준 효과도 없지 않다. 서양은 갈등을 겉으로 드러내는 문명을 낳았고,동양은 갈등을 쉬쉬하며 덮어버리는 문명을 만들었다. 오랜 역사를 통해 갈등을 드러내 경쟁하는 틀을 만든 서양은 결국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기술도 발달시켰지만,동양은 갈등을 덮고 억누르는 데 앞서게 되었다. 그것은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전통과 폐쇄적이고 전제적인 전통의 차이로 나타나기도 한다. 15세기 이후 서양인들은 이런 특징 속에서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나침반을 비롯한 항해 기술의 발달이 그 배경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16세기에 시작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경쟁은 곧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와의 갈등과 경쟁, 전쟁으로 이어졌고 전세계가 유럽의 식민지가 되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유럽 나라들에 엄청난 부의 축적으로 남게 되었고,그것은 또 유한(有閑)계층을 낳고,그들이 바로 과학기술자가 되었고,예술가가 되었다. 서양 문명의 원천은 갈등의 표면화를 통한 경쟁사회의 도출, 여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대선 결과로 한국은 이제 처음으로 '갈등의 공개적 표출'을 보인 듯하다. 갈등은 그동안 독재정권이나 권위주의적 사회구조 속에서 얼버무려져 왔다. 그것이 이번에 한꺼번에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위세를 업고 세대간의 갈등이 아주 노골적으로 표면화되었으며,그에 못지 않게 이념적 갈등도 드러났다. 한국 사회가 '갈등의 표면화'를 통해 합리적 경쟁의 시대로 접어들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일단 서양문명의 특징을 보이기 시작했다고는 판단된다. 그리고 그 점에서는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앞서는 역사발전의 단계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노골적으로 표면화한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공정한 경쟁 구조를 우리가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엉뚱한 위험이 우리 앞에 닥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