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언제부터 예수탄신일에 사용됐는지는 명확지 않지만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얘기가 그럴 듯한 것 같다. 밤중에 혼자서 산책을 하던 루터는 평소 어둡던 숲이 등불을 켜놓은 듯 환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때마침 크리스마스 이브였는데 소복이 눈이 쌓인 빽빽한 전나무 숲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나무 가지를 집으로 가져와 그 위에 솜을 얹고 예수님의 빛을 상징하는 의미로 촛불을 켰다는 것이다. 생일날 촛불을 켜는 것은 중세 독일 농촌에서 어린이를 위한 생일축하행사인 '킨데 페스테'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생일을 맞은 아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촛불로 장식된 케이크를 아이 앞에 내놓았고,저녁시간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먹을 때까지 불을 끄지 않았다. 촛불은 곧 '생명'과 '소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촛불은 이제 우리와도 매우 친근하다. 종교의식은 물론이고 웬만한 모임에는 촛불이 등장해 한껏 분위기를 돋운다. 촛불은 또한 자신의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상징성으로 인간의 양심을 나타내는 표상이기도 한데,촛불행진이 평화적인 시위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것은 이런 이유일 게다. 촛불에 대한 우리 정서는 남다르다. 신석정(辛夕汀)시인은 1939년에 발표한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라는 시에서 "어머니,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라며 농촌의 해질 무렵 풍경을 서정적으로 풀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시인 이개(李塏)가 읊은 "방안에 혓는 촛불 눌과 이별 하였관대/겉으로 눈물지고 속타는 줄 모르는고"라는 시구도 호평을 받기는 마찬가지이다. 젊은이들은 힘들고 외롭고 절망한 처지를 촛불에 빗댄 많은 노래들을 애창하고 있기도 하다. 어둠에 광명을 주고,희생을 보람으로 삼고,자신의 의지를 굽힘 없이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고의 눈물을 흘리는 '촛불정신'이야말로 다시금 새겨야 할 정신이 아닐까 싶다. 특히 대내외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맞는 올 크리스마스는 여느 해보다 촛불의 뜻이 더욱 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