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y@nca.or.kr 필자가 일하는 직장은 분야가 그래서인지 고학력자들이 많다. 요즘 고학력이 어디 이곳 뿐일까마는 그래도 대학원 졸업 이상이 80%를 넘으니 많은 축에 속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엘리트 의식,즉 선택된 소수라는 의식이 강하다. 국가의 생존과 미래를 책임지는 소수 엘리트는 반드시 필요하고,또 그런 의식은 반드시 경계해야만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마땅히 경계해야 할 엘리티시즘도 있다. 그것은 나는 합리적이고 상대방은 비합리적이라는 사고 방식이다. 합리(合理)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利)는 취하고 손(損)은 피하며''쾌락은 취하고 고통은 피하는 것'이다.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지 않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겠는가. 다만 이익과 손해나 쾌락과 고통을 판단하는 잣대가 사람마다 다를 뿐,취리피손(取利避損)은 불변이다. 골치 아프게 웬 합리성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일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국가정보화이고 정보화는 현상의 타개와 변화를 수반한다. 그럴 때마다 조직도 사람도 저항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고자 변하자는데 왜 저항하고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비합리적이라 반대하는가. 아니다. 저항하고 반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변화는 고통이요 손해이기 때문이다. 지난 60년대 인도의 인디라 간디 수상은 먹을 것도 없는데 자식을 7,8명이나 낳는 자국민이 비합리적이라고 보고,산아제한을 위해 길거리에서 남자들에게 정관수술을 강제로 시행한 적이 있다. 결과는 주민의 폭동으로 이어졌고 정권이 무너지기도 했다. 인도인에게는 다산이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사실을 무시한 무서운 결과였다. 앞으로 새 정권이 들어서면 또 개혁하고자 할 것이다. 진정으로 개혁을 원하고 동참하는 개혁을 원한다면,저항세력의 고통이 더 이상 고통이지 않게 하는 사전조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엘리트의 합리와 국민의 합리는 다른 것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