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에 이어 미국도 한국 반도체 회사들에 대해 보조금 조사를 벌일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받아들일 수 없는 억지논리다. 보조금 문제라면 한국업체를 제소한 미국 마이크론사와 유럽 인피니언사가 오히려 혐의점이 크다는 것이 국제 반도체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미국 상무부와 국제무역위원회(ITC) 그리고 유럽연합의 이번 보조금 조사는 자국 반도체 업체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산업 불황의 원인을 한국기업에 전가하는 상투적인 수법에 불과하다. 마이크론 등은 이미 작년에도 하이닉스에 대해 정부지원 문제를 제기하는등 보조금 논란을 자사의 생존전략으로 활용하는 듯한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당시 마이크론은 하이닉스에 대한 채권단의 CB인수 등 구조조정 지원과 회사채 신속인수를 정부 지원이라고 주장했었으나 여기에 대해서는 IMF 등 국제기구조차 보조금으로 볼 수 없다는 판정을 내린 바 있다. 똑같은 문제를 이번에 다시 들고나온 것은 국제적인 논란을 확산시키면서 스스로에게 요구되는 구조조정 압력을 희석 혹은 지연시키고 자국 정부로부터는 가능한 한 더많은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얄팍한 전략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마이크론과 인피니언은 그동안 하이닉스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 채권단이 신규자금까지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는등 스스로의 주장과는 모순되는 주장과 행동을 되풀이 해왔다. 더구나 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년동안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은 곳은 오히려 마이크론과 인피니언이다. 마이크론은 98년 이탈리아와 싱가포르에 있는 자사시설을 확장하면서 두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고 인피니언은 작년 5월 독일 작센주 드레스텐의 공장을 증축하면서 지방정부로부터 1억9천2백만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와 채권단의 분명하지 못한 처신이다. 하이닉스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채권단의 결정에 일일이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풍겨왔던 것이 사실이고 채권단 또한 하이닉스 구조조정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세우지 못한채 시일만 끌면서 오해받을 여지를 제공해왔다. 채권단과 정부는 하이닉스 처리에 분명한 원칙을 세우고 일관되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당장의 근거없는 보조금 시비에 대해서는 정정당당하게 부당함을 밝히고 나아가 상대방 국가와 기업에 대해서는 공세적 태도를 취하는 적극적인 대응 전략도 필요하다. 보조금 시비를 언제까지 끌고갈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