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발전의 상징으로 불려 왔던 컴덱스쇼가 옛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1979년 처음 개최된 이래 컴덱스는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최신 기술을 선보이며 미래를 선도하는 종합 IT전시회로 영광을 누려왔다. 국내 업체들에게도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꿈의 무대'였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 국내업체 임원은 "몇 년 전만 해도 비용문제와 숙소예약의 어려움 때문에 6∼7명이 한 호텔 방에서 잠자는 것도 기꺼이 감수할 만큼 최고의 행사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2000년을 고비로 위상이 추락했다. 참가업체 수가 줄어든 것은 차치하고라도 전시품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게 관람객들의 평가다. 그나마 유수 업체의 CEO들이 기조 연설을 하는 탓에 겨우 손님을 모으기는 했지만 전문 전시회보다 내실이 떨어져 삼성전자 휴렛팩커드 등은 내년 행사 참가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다른 전시회와 통폐합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컴덱스 주관사인 키스리미디어(Key3Media)도 최악의 상황이다. 현지 언론들은 이 회사가 파산신청을 하거나 매각·합병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회사 주가도 1센트 수준으로 거래조차 희박하다. 세계 경기 침체와 IT 거품 붕괴 등이 컴덱스 쇠락의 요인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내부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당초 컴덱스는 컴퓨터 판매상을 위해 만들어졌다. 컴덱스(COMDEX)라는 이름 자체가 '컴퓨터 판매상 엑스포'(Computer Dealers Exposition)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명성이 높아지면서 판매상보다 일반인들이 대거 참여하게 됐다. 업체들은 구경만 할뿐 거래가 어렵다고 불평하기 일쑤였다. 컴덱스는 이런 변화에 무심했다. 발길 돌리는 기업들을 잡아낼 뚜렷한 대책을 찾지 못했다. 기업들은 결국 분야별 전문 전시회로 속속 빠져나갔다. 철저한 판매상 위주의 운영으로 독일 하노버시 전체를 먹여 살릴 정도로 규모가 커진 세빗 전시회와는 대조적이다. 컴덱스의 사례는 과거의 영광에만 안주한 기업이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 보여주는 전형이 됐다. 자존심이나 자만은 기업의 생존에 독이 되기 십상이다. 라스베이거스=김남국 산업부 IT팀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