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계식 현대중공업 사장(60)은 늘 일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선비처럼 꼿꼿한 자세를 잃지 않는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최고경영자(CEO)다. 마른 체구에 푸른색 작업복 차림으로,차렷 자세로 45도 이상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하는 모습에서 대표이사임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평소엔 현장직원들이 거리감을 느낄까 봐 넥타이도 매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만나 몇 마디만 나누고 나면 '소박할 것'이란 예상은 깨지고 만다. 학문적으로 그리고 CTO로서 쌓아온 관록에 압도되는 것이다. 그는 서울대 조선공학과(61학번)를 졸업한 후 미국 버클리대에서 조선공학 및 우주항공학 석사를,MIT에서 해양공학 박사를 땄다. 국내외에서 발표한 논문도 1백20편으로 웬만한 교수보다 많다. 특허도 40여건이나 획득했다. 지금도 그의 사무실은 각종 학술서적과 논문으로 빼곡히 차있다. 그는 미국의 선박건조회사인 리튼십시스템스에서 첫 발을 내디뎠다. 이곳에서 미국 해군의 구축함 30척을 동시에 건조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박사 학위를 딴 후 귀국,1979년부터 12년간 대우조선에 몸담으면서 기술연구소장 등을 거쳤다. 90년 현대중공업으로 옮긴 다음 선박해양연구소 부사장,기술개발본부 부사장을 거쳐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최길선 사장과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선박해양연구소 산업기술연구소 기계전기연구소 등을 총괄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위기에 빠진 것은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일류상품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등상품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온리 원(Only One)'론을 고집한다. LNG선(조선사업본부) 선박용 중형 디젤엔진(엔진사업본부) 해수담수화 설비(플랜트사업 본부) 등을 일류상품으로 선정해 육성하고 있는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이공계 기피현상은 반드시 뿌리뽑혀야 할 망국적 현상"이라며 "기업에서도 연구원들에게 너무 단기간 안에 성과를 요구하지 말고 안정된 연구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친 90년대 말에도 회사의 연구개발(R&D)비가 한 푼도 깎이지 않도록 하는데 앞장섰다. 민 사장은 지금도 매일 10㎞씩 달린다. 이따금씩 점심시간을 이용해 고정멤버 10여명과 함께 회사 주변을 뛰기도 한다. 그래서 백발의 마라토너로 통한다. 그는 하루에 17시간씩 일을 한다. 한 경영전문지로부터 1백대 기업 CEO가운데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인물로 뽑히면서 '일벌레'임을 공인받은 것이다. 울산=조정애 기자 j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