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구도조차 아직 분명치 않고,기싸움과 세다툼으로 긴장감이 감돌고,'그저 어서 대선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많지만,이럴 때 차라리 마음 크게 먹고 덕담을 해보자. 그 유명한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가 꼽은 지도자의 덕목 중 흥미로운 대목 하나가 있다. '지도자는 짜다는 평판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유력후보인 노무현 이회창 정몽준(가나다 순)은 적어도 언론을 통해 들리는 말로는 '짜다'는 평판을 듣고 있으니,지도자 덕목 중 하나는 확실히 갖춘 것 아닐까. 조직 운영에 별로 기름기가 없고,정치 후원금 모으는 데 그리 출중하지도 못하고,지출에 여간 깐깐하지 않다는 평이다. 노무현 후보는 자발적 푼돈 후원을 선호하는 편이고,이회창 후보는 자금 논의 자리를 아예 피하는 편이고,정몽준 후보는 재산가에 대한 주변의 기대에 반하여 짜다는 편이란다. 이것만 해도 변화는 큰 변화다. 그동안 정치지도자들을 일컫던 '통 크다,손 크다,제 사람 확실히 챙긴다' 같은 말들,비판하는 척 하면서도 은근히 기대하고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던 말들은 사라졌다. 오히려 많이 나오는 말은 '강직하다,소신있다,깐깐하다,솔직하다,검소하다,가까운 사람에게 엄하다'같은 말이니,세상은 확실히 변하긴 변했다. 물론 이것도 아직 믿을 것은 못된다. 이들 중 아직 아무도 최고지도자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마키아벨리가 꼽은 또 다른 덕목이 기다리고 있다. '정상에 오르는 순간,지도자는 부패와의 싸움을 감행해야 한다!' 드디어 정상의 자리에 올라 '짜디 짜다'는 평판을 들을 정도가 되려면 이것은 소신을 지키는 배짱도 배짱이려니와 덕목도 보통 덕목이 아닐 것이다. 논공행상은 어떻게 할 것이며,선심 국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최고지도자의 최대 골칫거리는 논공행상일 것이고,최고지도자에 대한 최대 유혹은 선심 국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부패와의 싸움'을 지나치게 요란하게 하거나,'너무 짠' 원론적 잣대만을 들이댔다가는,안그래도 고독한 최고지도자는 더욱 더 고독의 성에 틀어박히게 될지도 모른다. 짜다는 평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패와의 투쟁을 벌이면서도 여전히 다양한 이해집단간의 국민 화합과,화평하고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또한 지도자의 필수 덕목일 터이니 말이다. 확실히 민주주의의 꽃인 이 '선거'는 분명 '결함이 많은''가장 이상적'인 제도다. 표를 얻기 위해서는 세도 필요하고 자금도 필요하고 후원자도 필요하고 팬도 필요하고 지지자들도 필요하다. 물론 믿을 수 있는 자기팀도 필요하다. 현실적인 과정이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고 '해야 하는 일'이 아닌 것을 알더라도 약속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위치에 후보는 서게 된다. '공약(空約) 아닌 공약(公約)을 하라'는 언론의 질책도 사실은 명분 쌓기용 질책에 불과하게 돼버리기도 한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도 '결선 선거제도'가 도입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양당제가 그리 뚜렷한 것도 아니고,다수 후보군이 등장하는 추세가 자리잡는 듯하고,정치 철새들이 살아남는 현실이고,합종연횡이 대종의 현실인 우리 사회이고,정책노선 보다는 크고 작은 '바람'사건들에 의해서 여론이 춤을 추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아 그러하다. 결선 투표를 한다면 적어도 두가지 이점은 확실할 듯 싶다. 첫째,적어도 자기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라 생각하는 국민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둘째,결선 투표장에서는 적어도 정책대결에 집중하는 경향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보다 많은 국민들이 뽑아준 대통령,보다 내용적인 정책대결의 결과로 당선된 대통령은 적어도 논공행상의 압력이나 선심국정의 유혹에서 좀 더 자유스러워지지 않을까? 짜다는 평판도 두려워하지 않고 부패와의 싸움도 제대로 하지 않을까? 대선 유력 후보의 성격 변화에 주목하거나 '대통령의 의지'에 대해서 믿는 것 보다는,그야말로 제대로 뽑아 제대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가 더 필수적이지 않을까 싶다. jinaikim@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