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lee@univera.com 지난주 중국에 다녀왔다. 중국 해남도에 조성중인 우리 회사의 알로에농장 부지를 둘러보기 위한 출장이었다. 미국 현지법인 사장단과 합류해 중국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한솥밥을 먹는 한국인 중국인 미국인 영국인 등 각기 다른 인종의 임원단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을 빼고는 평소 출장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10여명에 이르는 우리 일행이 농장을 돌아보던중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뜻밖의 일들이 벌어졌다. 60만평의 부지를 차근차근 돌아보느라 우리는 차도 버리고 도보로 시찰을 하는 중이었다. 비가 쏟아지자 들어갈 때는 사뿐히 건넜던 얕은 시냇물이 허벅지까지 차 오르는 사나운 물살로 변해 버렸다. 물이 더 불어나기 전에 우리는 그 개울을 건너야 했다. 조심스레 열을 지어 급류를 가로지르는데 믿을 것이라곤 서로의 맞잡은 손길뿐이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간신히 개울을 건너섰을 때,자전거를 탄 농민 한사람이 우리 앞으로 달려왔다. "저 앞 오솔길이 완전히 늪이 되어버렸다"면서,자기도 건너는 걸 포기하고 되짚어 돌아가는 중이라 했다. 그 농부 말 대로 우리 갈 길은 20m나 넘는 거대한 늪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달리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다시 열을 지어 그 늪을 건너기 시작했다. 마지막 사람까지 무사히 건너고 난 뒤 흙투성이가 된 서로를 마주보다 갑자기 푹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어린애처럼 깔깔대며 구정물로 얼룩진 서로의 등을 닦아주고 더덕더덕 붙은 거머리도 떼어주었다. 미국에서 온 60대 임원은 자기 직장생활 30년 만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이 진창길은 일부러 포장하지 말고 그냥 놔두자고 제안했다. 달콤한 피로에 젖어 호텔에 돌아와 보니 세상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체첸반군의 인질극이며,워싱턴DC에서 계속되고 있는 총격테러,발리의 참사와 북한 핵문제까지,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는 온통 폭력과 죽음의 악몽 뿐이었다. 한쪽에선 압제에 반항해 테러를 한다고 하고,한쪽에선 테러를 하니 전쟁으로 응징한다고 맞선다. "'눈에는 눈…'이라는 생각은 이 세상 모두들 장님으로 만든다"던 간디의 경고가 무색하다. 살육과 전쟁의 광기란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과는 거리가 멀다. 원시의 자연 속에서 인간이 나누던 원초적 교감과 공존의 지혜는 뒤로 한 채 세상은 지금 덧없는 욕망의 자장에 갇혀 극으로,극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