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엔 IMF 구제금융체제 하에 있었고,약 5개월 전엔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전 세계의 화면을 붉고도 화려하게 장식했으며,그 후 2개월 후엔 태풍 피해를 입어 여러 도시가 초토화된 나라-.극적인 사건들만 추려 적어넣는 '세계의 시사 토막상식 퀴즈'에 채택될 만한 문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사건들을 이어주는 납득할 만한 일관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어떻게 IMF 구제금융체제와 월드컵 축제 분위기를 연결시킬 수 있으며,'지구 어느 곳에서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숨은 저력을 보여준 나라'의 재해대비가 얼마나 허술했기에 '예외적 자연조건'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해도 도시전체가 초토화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살아내는 것이 일상화돼 있는 우리들만이 알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 덧붙여질 사건들은 무수히 많다. 한편으로는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가,다른 한편으로는 선진적 특징과 후진적 특징이 뒤섞이고 희비가 엇갈리는 사건들이 짧은 시간대에 예상을 뒤엎고 일어난다. 그러느라 매일 삐꺽거려도 그것 또한 일종의 관행이 돼버린 듯 얼마 후면 무심하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의 모든 사건들은 일관성을 갖지 않으며,다양한 요소들이 공존하고 부딪치면서 현실은 비옥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커다란 사건들 속에는 한 공통체의 방향이 드러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방향은 시대착오적이며 무정부적이라고 수식할 만하다. 대부분의 선진국가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안온한 수면상태에 비한다면 우리의 역동성에 가능성이 있다고 위로도 해볼 수 있다. 그래도 '앞이 어디냐'고 의견이 분분할 수는 있어도,뒤로 가는 것보다는 앞으로 가는 것이 신나는 일이며,원칙없이 방황하는 데 힘을 빼기보다는 한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과 격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가치들을 지향할 때 에너지가 집결되는 것은 상식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나는 한 해의 이맘때만 되면 마치 오래 전 수술한 부위에 통증이 오듯 가슴이 지레 철렁 내려앉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5년 전 이즈음 우리 모두에게 벼락처럼 내리쳐진 경제 위기에 대한 충격이 그 여진을 어김없이 발휘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몇해나 더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다행히도 빠른 시간 안에 우리는 그 재난에서 빠져나왔지만,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정정당당히 야박해졌고,돈의 가치는 단 하나의 확실하고도 유일한 가치로 한국사회에 자리잡아, 지난 한 두해 새해인사로 '대박하세요''돈 많이 버세요'같은 우리 문화에서는 다소간 생소한 인사말이 유행이 됐으며,늘 피곤하고 졸아든 과거 근대화의 '생산역군'과,늘 갈증에 시달리는 현재 '소비역군'이 한 지붕 밑에서 부자관계로 공존한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사회 거의 모든 활동분야에서 창조적인 시도나 새로운 실험을 기피하게 하고,당장 돈 되지 않는 것의 잠재적 가치를 판단할 기준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모든 것이 서서히 하향평준화된다. 젊고 재능있는 인력일수록 눈 앞의 계산에 가진 능력을 소진하고,더 뛰어난 인재들은 아예 국내에 없다는 증명되지 않은 소문이 기운을 빠지게 한다. '부르주아 보헤미안'이라고 하면 근사해보이지만,안으로 들어가보면 '적당히 돈벌고 제대로 된 취향을 키울 기회도 부여받지 못한 시시껄렁한 문화소비자'가 많은 젊은이들의 은근한 꿈이라니! 때때로 나는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그나마 고유했던 가슴과 머리의 한 조각을 누군가에게,무엇인가에게 떼어준 것이 아닌가'자문할 때가 있다. 대체 무엇을 위해,누구를 위해 몸의 한 부위를 덥석 떼어줬는 지 시간이 지나면서 꼭 도둑맞은 기분이 든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이 '보이지 않은 상실'들을 회복하는 것은 더욱 많은 시간이 들어가고 공이 들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순수한 정열을 되살리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대선 준비로 시끌벅적한 요즈음 난무하는 정책의 진위를 바로 이 전도된 가치의 회복 의지 여부로 가려내려고 한다. choey@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