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전11시 광주 서석초등학교 강당인 서석당(瑞石堂)엔 4∼6학년 학생 3백50여명이 특별한 '선배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바로 나정웅(62) 광주 과학기술원(K-JIST) 원장이었다. "제가 이 학교 43회 졸업생입니다.지금 6학년 학생들이 졸업하면 93회가 되니까 제가 꼭 50년 선배가 되는셈이군요.서석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던 옛날 기억이 생생합니다.학교 건물도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어서 과거로 되돌아온 기분입니다" 나 원장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인사말을 건네자 할아버지 뻘되는 선배님을 만난 학생들은 신기한 듯 귀를 쫑긋 세운다. 나 원장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선정한 '과학기술 앰배서더'로 모교를 찾았다. '과학기술 앰배서더'는 청소년들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이공계 진출을 장려하기 위해 초·중·고교를 방문,과학기술자로서의 삶과 보람을 들려주는 프로그램. 4백30명의 앰배서더 가운데 나 원장이 이날 스타트를 끊은 것이다. 그는 지난 1990년 자신의 연구팀이 개발한 전자파 발생기를 이용해 제4땅굴을 발견한 일화를 소개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여러분들 땅 속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땅 속을 보는 기계를 만드는 데 10년 가까이 걸렸습니다.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 드리죠" 나 원장은 연단에 설치된 대형TV로 비춰지는 각종 그림과 자료화면을 활용해 설명을 했다. "집에서 TV를 보는 원리가 뭘까요? 방송사가 안테나를 통해 전자파에 그림을 실어서 집에 있는 TV로 보내는 겁니다.비슷한 원리를 이용하면 땅 속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착안한 거죠" 그는 땅 속에 세로로 길게 구멍을 판 후 땅 속에서 옆으로 전자파를 쏜 후 반대편에 나타나는 전자파의 파동을 분석해 땅굴이 있는지 여부를 판별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런데 실험도중에 문제가 생겼어요.전자파는 새어 나오면 큰 일 납니다.집에서 쓰는 전자레인지도 전자파를 이용한 거죠.여러분 손이 전자파에 닿으면 화상을 입거나 다치게 되겠죠.땅굴 찾는 기계에서 쓰는 강한 전자파가 밖으로새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서 고민을 계속했어요.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플라스틱으로 감싸면 되죠" 한 학생이 곧바로 대답했다. "플라스틱으론 어림도 없어요.50㎝가 넘는 철판으로 감싸도 전자파가 새 나왔거든요.3개월 넘게 고민하다 우연히 해결책을 찾았어요.연구소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라디오가 방송되더군요.안테나로 전기신호를 받아 주파수를 바꿔 소리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라디오 방송이 전달되죠.해결법이 문득 떠올랐어요.철판은 전혀 쓰지않고 전자파의 주파수만 바꿔 간단히 문제를 풀었죠.전자파가 새는 문제를 해결하고는 곧바로 강원도에서 제4땅굴을 찾아냈습니다" 나 원장은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은 그가 오랫동안 그 문제를 풀기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때문"이라며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었다면 결코 만유인력을 떠올릴 수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거나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하려면 수많은 잘못과 실수를 거치게 마련"이라며 "축구선수들이 평소에 열심히 슈팅과 패스 연습을 하지만 막상 경기때는 공을 잘못차는 경우가 많은 것도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나 원장은 "동료들과 같이 토론하고 잘못된 이유를 찾고 해결책을 생각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모르는 것을 꾸준히 탐구하는 과정이 바로 과학이며 훌륭한 과학자는 실수를 겁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학생들은 나 원장에게 "로보트 만들어 주실 수 있어요" "손 한번 잡아주세요"라며 매달렸다. "과학기술 앰배서더의 활동은 대성공이었다."는게 관계자들의 평가였다. 광주=글·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