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학상을 받은 석학들이 한국에서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강연에 나선다. 화학상을 받은 미국 하버드대 허슈바흐 교수(71.86년 수상)와 영국 서섹스대 크로토 교수(64,96년 수상),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 콜로라도대의 코넬 교수(42,2001년 수상)는 22일 코엑스에서 '과학과 대중의 만남'이란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한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이사장 최영환)이 노벨상 1백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이번 강연회에서 허슈바흐 교수는 '노벨상을 향한 과학교육', 크로토 교수는 '영국사회의 과학대중화', 코넬 교수는 '나는 왜 과학자가 되었나'라는 제목으로 강연한다. 이에 앞서 허슈바흐 교수는 21일 서울대에서, 크로토 교수는 한양대에서 각각 강연을 했다. 허슈바흐 교수를 만나 과학 대중화의 필요성 등에 대해 들어봤다. ----------------------------------------------------------------- "과학은 기술이 아니라 문화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과학을 발전시키려면 특정 소수를 위한 기술이나 전문지식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문화로 봐야 합니다." 더들리 허슈바흐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과학의 문제는 과학을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로 생각하는데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과학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것이 과학 문제를 푸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이를 올바로 키우려면 마을전체가 합심해야 한다'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주장을 예로 들면서 "과학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과학 교사들에게만 책임을 지워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과학 관련 사회 인프라를 다양하게 갖추고 보다 많은 학생들이 여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귀족계층이 폭넓게 음악을 즐겼던 18세기 유럽에서 바흐와 같은 훌륭한 음악가가 여럿 나왔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과학을 즐기고, 관련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과학도 발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보스턴 과학박물관의 연간 관람객이 보스턴 레드삭스 구장의 방문객보다 많다"며 "훌륭한 과학시설이 있으면 대중은 기꺼이 그 곳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슈바흐 교수는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온 인물로 꼽힌다. 5년전부터 일반인 대상의 TV 과학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고 직접 출연도 하고 있다. 과학잡지 편집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 'Nobel Legacy'는 노벨상 역사를 담은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꼽히고 있다. 11월부터는 미국의 정치가이면서 과학자인 벤자민 프랭클린에 대해 그가 강의한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이 PBS 방송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그는 "한국에도 과학을 다루는 언론매체가 더 발달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과학관련 비영리기구인 '사이언스 서비스'의 이사회장과 과학전문 주간지 '사이언스 뉴스'의 이사를 맡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과학자들이 대중을 대상으로 방송 인터넷 등 매체나 저술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슈바흐 교수는 "'사이언스 서비스'는 해마다 60만∼70만달러 이상을 들여 과학영재 선발행사('ScienceTalent Search')를 열고 있으며 인텔이 이 행사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50여년간 지원해온 웨스팅하우스에 이어 새로운 후원자를 물색할 때는 72개 업체가 신청을 했을 정도로 기업의 관심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선 "사회 전체의 관심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상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집중 지원하기 보다는 과학연구자들의 활동 전반에 대해 사회 전체가 격려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 집중적인 연구를 한 경우보다는 우연히 중대한 발견을 한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새로운 각도에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면 노벨상을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해서는 "시대마다 인기있는 직업이 바뀔 수 있지만 지금과 같은 경쟁 상황에서 기술을 도외시하고는 기업이든 국가든 앞서갈 수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과학은 탐구이자 일종의 모험입니다. 자연을 이해하고 인간 삶에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눈과 마음을 열고 사물을 관찰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는 올바른 과학자의 자세를 이같이 설명했다. 조정애 기자 strong-korea@hankyung.com ----------------------------------------------------------------- < 허슈바흐 교수 > 미국 캘리포니아주 출생(1932년)으로 스탠퍼드대와 하버드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58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받았다. 59~61년 캘리포니아대 조교수를 거쳐 61년부터 하버드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63년 교차분자빔법을고안, 화학기본반응 연구에 필수적인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단위 화학반응 동역학' 발전에 기여했다. 교차분자빔법은 여러 분자를 작은 구멍을 통해 빔으로 쏘아 그 교차점에서 분자들이 충돌해 일으키는 반응을 동역학적으로 규명하는 것. 이 방법을 통해 화학기본반응의 동역학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리 위안저, 존 폴러니와 함께 8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