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매니저인 빌 그로스.미국 최대 뮤추얼펀드인 핌코토탈리턴 소속인 그는 월가의 프로들에겐 '채권왕'으로 불리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가 지난 9월부터 '스타'로 떴다. "다우지수가 5,000선까지 떨어진다"는 주장을 펴면서부터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그의 말에는 더욱 무게가 실렸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등이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다"고 외쳤지만 투자자들은 그로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나라건 주가가 떨어질 때는 가장 낮은 점을 얘기하는 게 가장 눈길을 끄는 법.지난 9일 다우가 5년만의 최저치인 7,286으로 주저앉자 유명 애널리스트들조차 이 대열에 끼었다. 6,100(퍼스트 알바니증권의 휴 존슨)은 물론 5,500(푸르덴셜증권의 랄프 아캄포라)선까지도 떨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월가는 다음날부터 수직상승했다. 시장이 급등하자 애널리스트들의 말도 금세 달라졌다. 비관론이 쑥 들어가고 태연하게 '연내 10,000선 회복론'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1주일만에 분위기가 급변한 이유는 한마디로 '예상보다 좋은 기업수익'덕이다. 그러나 그 '예상'들은 어려운 경영현실을 감안해 애널리스트들이 이미 낮춰놓은 숫자들이다. 예를 들어 기업수익추정 연구소인 톰슨파이낸셜퍼스트콜이 3분기가 시작할 때인 7월 초 S&P500대기업의 분기수익증가율을 17%선으로 추정했으나,분기가 끝나자 이를 4.7%로 하향조정했는 데 실제 수익이 4.7%를 넘었다고 흐뭇해 하는 격이다. 월가에서도 일부 분석가들은 이라크 전쟁,반미테러 확산에 '북한 핵'이라는 돌발변수까지 생긴 점을 주목하고 있다. '북한 핵'이 발표된 후 첫 장인 17일 '수익호전'재료에 묻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은 것도 오히려 부담이란 판단이다. 시차를 두고 반영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나스닥 버블을 유도했던 장본인들이다. 야후주가가 4백달러까지 갈 것이라고 주장했던 헨리 블로젯 등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지금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증시의 급등을 조금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이유들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