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 전(前) 미국 대통령이 올해의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그것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지 20여년 만에 받는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20년이라는 세월은 참으로 긴 세월이다. '자리'에서 물러나 두달만 지나도 잊혀지는 우리 세태에서 보자면 더욱 그렇다. 지난 1981년 2월 재선(再選)에 실패한 카터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백악관을 떠나야 했을 때 그의 나이 겨우 56세였다. 정치인으로는 완숙한 나이였고,신체적인 건강도를 감안하더라도 은퇴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다. 그러나 카터는 백악관문을 채 나서기도 전에 전미(全美)은퇴자협회로부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는 연락을 받아야 했다. 한마디로 '퇴물'이 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절친한 친구 의사가 자신의 신체건강상 기대수명이 80세 이상이 될 것이라고 귀띔해 주었을 때 카터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을 느껴야 했다. 도대체 남은 25년,아니 그 이상의 세월 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란 말인가. 미합중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마당에 말이다. 사실 카터는 백악관을 떠나 고향인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땅콩농장이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과 단절되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카터에게 대통령직에서의 퇴임이란 무덤 앞에 선 것과 다를 바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카터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란 점점 확대되는 것이지 결코 축소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사실 카터의 '대통령 성적표'는 그리 좋은 편이 못되었다. 윌리엄 라이딩스 2세(William J Ridings,Jr.)와 스튜어트 매기버(Stuart B McIver)가 미국과 캐나다의 미국학 및 미국사 전공자 7백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역대 미국대통령들에 대한 평가서(Rating the Presidents)'에 따르면,카터는 지도력 면에서 28위,업적 및 위기관리능력에서 22위,정치력에서 32위,인사에서 14위,그리고 성격 및 도덕성에서 5위를 차지해 조사대상인 41명의 미국대통령 중 전체순위로는 19위에 그쳤을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살아온 지난 20여년의 세월 속에서 카터는 아무런 보수도 명예도 없이 니카라과 북한 쿠바 동티모르 등지를 찾아가 화해와 협상의 메신저 역할을 해냈다. 정작 대통령 시절에는 실패했던 '도덕적 이상주의'의 깃발이 그의 퇴임 후에는 오히려 빛을 발한 셈이다. 또 그는 웅변이나 거창한 연설이 아니라,손수 망치와 톱을 들고 집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운동같은 소박한 일상 속의 실천활동을 통해 우리 앞에 한 사람의 평범한 일꾼의 모습으로 서있으면서도 진정한 당당함과 위대함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결국 그는 '퇴임후 성공'한 것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아름답고 위대한,'영원한 현역'이었다. 카터는 '나이 드는 것의 미덕(The Virtues of Aging)'이란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고. 그렇다. 우리는 단지 나이를 먹어가면서 늙는 것이 아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고,절망이 희망을 대체하면서 늙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꿈이 후회를 뒤덮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결코 늙지 않는다. 카터가 진정으로 훌륭한 까닭은 그가 퇴임 후 나이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과거의 '후회'가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꿈'으로 채워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결코 늙지 않았다. 우리에게 카터는 단지 노벨상 수상자로서가 아니라 노령화사회를 살아갈 우리 모두에게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삶의 모델로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든,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이든 언젠가는 모두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카터처럼 거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인생의 노벨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 인생의 노벨상에는 로비의혹도 잡음도 있을 수 없다. 오직 삶에 대한 미소 띤 관조(觀照)만이 있을 따름이다. atombit@netian.com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