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에 따라 맛의 차이가 현저하지만 분위기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 "파스타"다. 파스타 전문점의 실력을 알아보려면 "Oil & Stock"파스타를 맛보는 것이 좋다. 재료들의 고유한 질감과 향이 제대로 살아있는지 소스에서 진한 육수의 맛이 묻어나는지를 보면 평가가 쉬워진다. "비싸면 맛있겠지"라는 편견은 버리자. 페투치네,펜네,딸리아뗄레 등 복잡한 용어들이 메뉴판을 가득 메우고 있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실력있는 요리사라면 각각의 소스에 잘 어울리는 면의 종류를 배치해 놓고 자신만의 맛을 선보일 준비를 했을테니 말이다. 실력 있는 식당들이 자웅을 견주는 요즘 단 세 곳을 꼽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고급스럽고,실력 있고,재미있는 곳.세 집을 소개한다. 본 뽀스또(청담동 동궁타운 예식장 옆,02-544-4081)=이미 정평이 난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 최고라 평가받는 "일폰테" 출신들이 지키고 있는 주방에서는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메뉴의 구성이 교과서만큼이나 잘 재단되어 있다. 훌륭한 메인 요리와 미니멀리즘을 기반으로 한 인테리어가 지루한 일상에 활력을 주는 곳. 어느 곳이던 신선함을 확인하기에 가장 적절한 대상은 해산물이다. 날치 알을 얹어 토마토 소스로 맛을 낸 새우 날치알 스파게티는 씹을 때마다 톡톡 터지는 날치 알의 씹는 재미와 함께 큼직한 새우가 눈을 즐겁게 한다. 토마토 소스를 사용했지만 새콤하다기보다 풍부한 오일의 향취가 강하다. 깔보나라는 생크림과 달걀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풍부하고 진한 맛을 낸다. 이 집의 유명 메뉴인 게살소스 스파게티 또한 게살이 듬뿍 들어 이름 값을 톡톡히 한다. 목동 현대백화점의 분점에서는 훨씬 저렴한 가격에 본 뽀스또의 맛과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소노(SOGNO)(홍익대학교 정문 앞 맥도널드 옆,02-326-3101)=젊음의 거리 홍대에서 만난 실력있고 유쾌한 파스타 전문점. 일본에서 이탈리아 요리사들에게 비법을 전수 받았다는 이 집은 유감없는 실력을 보여준다. 올리브 오일과 해산물,치킨 육수로 소스를 만드는 oil&stock 파스타는 국내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정도로 최고 수준이다. 신선한 해산물을 와인으로 졸인 후,올리브 오일과 우럭 육수로 소스를 만들고 커다란 홍합,바지락,새우로 토핑한 해산물 스파게티는 각 재료의 독특한 맛과 질감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면 깊숙이 소스가 배어 맛이 겉도는 일은 절대 없다. 매콤한 페페로치니(고추)를 오일에 볶아 토마토 소스로 마무리한 아라비아따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셔야 진정이 될 만큼 알싸하다. 새로운 맛에 도전하고 싶다면 뇨끼(Gnocchi)가 어떨까? 감자를 갈아 반죽한 뇨끼는 사골육수에 포르치니 버섯으로 색과 향을 내고 파마산치즈로 맛을 더한 소스가 독특하다. 머시메로우 크기의 뇨끼 한 덩어리를 소스와 함께 입에 넣으면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게 녹아 내린다. 이 집의 주방에선 요리가 아니라 꿈(SOGNO)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종로 1평(종로 교보문고 옆 피맛골,02-732-8323)=피맛골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종로 1평은 재미있고 별난 곳이다. 주방 옆에 달려 있는 기다란 나무탁자와 의자 3개가 전부인 초미니 식당. 그래도 메뉴는 8가지나 된다. 손님 바로 옆에서 조리를 하다보니 면 삶는 정도,소스의 스타일,토핑의 종류 등을 세세히 물어온다. 손님을 초대하고 흥분한 주인처럼 말투나 몸짓이 경쾌하다. 한번에 한가지 파스타 밖에 만들 수 없어 기다려야하는 불편이 따르지만 나만을 위한 특별요리를 준비한다고 생각하니 지루하지 않다. 달궈진 후라이팬 위에서 올리브 오일과 마늘,토마토,조개가 섞여 빚어내는 향은 입안 가득 침을 고이게 한다. 독특한 스타일의 먹물 파스타가 인기메뉴. 고급 레스토랑에선 반죽에 먹물을 넣고 면을 뽑아 쓰는데 이집은 소스에 먹물을 터뜨려 올리브 오일로 볶아낸다. 체리토마토와 작은 갑 오징어,조개로 토핑 한 먹물소스 파스타는 까칠한 고소함이 묻어난다. 소박한 이탈리아 뒷골목의 식당처럼 편안한 맛과 좋은 인상을 남긴다. 김유진 < 맛칼럼니스트.MBC PDshowboo@dreamwiz.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