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가 위스키로 동방의 나라,한국을 점령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한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지난해 스코틀랜드 위스키업계에선 이런 말이 나돌았다. 한국 소비자들이 귀하디 귀한 12년산,17년산 고급 위스키를 물 마시듯 소비해준 덕에 스코틀랜드 위스키업체들이 한국돈을 쓸어담고 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위스키가 불티나게 소비됐고 신제품이 줄지어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은 위스키가 어떻게 만들어지 잘 알지 못한다. 스카치 위스키의 본고장인 스코틀랜드를 찾아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위스키의 비밀을 알아봤다. -------------------------------------------------------------- 국내 위스키 1위 업체인 진로발렌타인스의 초청으로 지난 1일 스코틀랜드의 지방도시인 덤바톤에 도착했다. 때마침 이 작은 마을에는 동방손님을 반기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흐리고 비오는 날씨는 위스키산업에 꼭 필요한 자연조건입니다. 위스키 증발을 막아주기 때문이지요. 지천으로 널려있는 이탄(부엽토의 일종)도 마찬가지 조건이죠." 세계적인 주류그룹인 AD(Allied Domecq)의 홍보담당자 켄 린지씨는 스코틀랜드 특유의 흐린 날씨를 "신의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스카치 위스키의 비밀은 바로 "환경"에 있다는 얘기였다. 덤바톤은 세계 2위 위스키.와인 생산회사인 AD사의 보틀링(병입)공장 등 2백여개의 크고 작은 원액회사와 공장이 몰려 있는 곳. 2000년 2월 진로발렌타인스를 통해 한국에 진출한 AD는 임페리얼과 발렌타인이 히트한 덕에 단숨에 선두로 뛰어올랐다. 이 회사 공장의 내부는 "전통적 양조장"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거대한 컨베이어벨트와 특수금속관이 복잡하게 얽힌 첨단시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바닥으로 내려가자 독한 위스키 냄새가 코를 찔렀다. 40년 이상 곰삭은 오크통이 현대식 컨베이어 벨트와 어울려 묘한 대조를 이뤘다. "오크통에 위스키 원액이 꽉 들어차 있진 않습니다. 매년 2% 가량이 자연증발하고 그 부분에 공기가 채워집니다. 17년산의 경우 절반밖에 남지 않죠.이런 부분을 "천사의 몫"이라 부릅니다. "자연증발분이 많고 오랜기간 숙성보관을 해야하는 위스키의 제조원가가 비싼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켄 린지씨는 설명했다. 위스키는 증류 숙성 블렌딩 병입 등 7가지 단계를 거쳐 생산되는데,완제품 테스트와 오크통 운반 등을 제외하곤 모두 전자동 생산시스템으로 가동된다. 가장 핵심적인 공정이 블렌딩 과정.오크통에서 뽑아낸 각 지역 위스키를 큰 탱크에서 일정한 비율로 섞는 공정이다. "위스키는 보리로 만든 몰트위스키와 옥수수나 기타 곡물로 만든 그레인 위스키로 나뉘는데 이들을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이 두가지를 대략 4대6 정도로 혼합할 때 가장 맛이 좋은 블렌디드 위스키가 탄생하죠." 제조공정 안내에 동행한 로버트 힉스 AD그룹 마스터블렌더는 위스키에는 대략 20~50여가지의 위스키가 섞여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공장은 최근 생산능력을 초과해 24시간 3백65일 자동화시스템으로 돌아간다. 35만 상자분량을 보관할 수 있는 초대형 무인창고에는 완제품이 쌓이기가 무섭게 출하되고 있었다. 92%가 수출물량이다. 지난해 이곳에서 출고된 양은 1천4백50만상자(1상자는 7백50㎖ 짜리 12병).올해는 1천6백만상자가 목표다. 17년산 발렌타인의 경우 지난해 16만상자를 만들었는데 한국시장에 내다판 것이 6만상자라고 한다. "한국은 황금시장입니다. 특히 숙성연도 15년 이상 슈퍼프리미엄급의 시장은 매년 두배에 가까운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스키 시장의 84%를 차지하는 프리미엄급 뿐만 아니라 슈퍼프리미엄급 생산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동행한 데이빗 루카스 진로발렌타인스 사장은 앞으로 가장 잠재력이 큰 시장을 한국으로 꼽았다. 진로발렌타인스측은 고급화 추세에 따라 면세점에서만 판매해온 발렌타인 21년산을 조만간 도자기 형태로 시중에 선보일 예정이다. 라인증설에도 나서 1천5백만파운드(한화 약 3백억원)를 이미 투입한 상태다. "올 연말 성수기를 대비한 임페리얼과 발렌타인 판매전략을 수립해 놓았다"는 루카스 사장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30% 가량 늘어난 82만상자 판매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덤바톤(스코틀랜드)=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