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지원설'의 실체를 가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던 4일 산업은행.금융감독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일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결국 의혹규명에 실패했다. 다시 여러 의혹들만 봇물터지듯 쏟아버린 대북지원설은 오는 12월 치러질 대통령선거와 미묘한 연장선상에 놓여있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엄낙용 전산업은행 총재가 언급한 관련자들의 해명내용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자칫 대통령선거를 넘긴 후에도 진위 공방이 계속될 수도 있다. ◆청와대 압력 여부 = 당장 엄낙용 전 산은 총재가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를 언급한만큼 정치권은 청와대의 해명과 진실규명을 거세게 요구할 것이다. 한 실장이 증언즉시 "산업은행을 비롯한 어느 은행에도 전화를 하거나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엄 전총재의 성품에 비춰 `전혀 없는 사실을 지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청와대 개입여부는 현대상선 대출이 경제논리에 의한 산업은행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대북지원 등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뤄졌음을 입증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한 실장의 `연루'는 곧바로 김대중 대통령, 또는 한창 해빙무드인 남북관계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이 정도 사안을 전화 한통만으로 지시하기 어렵다는 통념상 앞으로는 한 실장과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간의 커넥션 규명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엄 전총재가 이근영 위원장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전해들었다고 답한데다 이위원장과 한 전실장이 이를 부인하고 있어 실체규명은 좀처럼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충식 현대상선 사장의 입장표명 = 김충식 사장은 이번 대북지원설의 주인공으로 사태의 진상을 소상히 파악하고있으면서도 관련자들의 `입방아'에만 오른채 아직까지 아무런 입장표명이 없었던 인물이다. 현재 미국에 머물며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김충식 사장이 엄 전총재에게 "현대상선이 쓴 돈이 아니니 갚을 수 없다"고 말한 배경 등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표명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역시 미국에 체류중인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현대상선이 사정이 어려워 자구계획에 썼다"며 대북지원설을 일축했지만 지금껏 드러난 정황상 신빙성은 다소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고 정주영 회장의 가신이었던 김사장이 `현대'에 누가 될 수 있는 대북지원설에 휘말리는 것을 꺼려 신병치료를 이유로 끝내 입을 다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게다가 김사장이 엄 전총재의 발언에 동조를 하든, 안하든 이미 공개돼버린 엄전총재의 폭탄발언을 근거로 대통령선거 운동에 묻혀 정치공방만 오갈 공산이 크다. ◆계좌추적 압력 계속 버틸까 = 이미 산은대출의 외압설이 제기된만큼 정부가 4천억원의 최종 사용처를 밝히는계좌추적에 계속 소극적 태도를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의혹이 계속 확대재생산되고 상황이 악화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출금 용처에 대한 계좌추적은 법규상 다소 위배 소지가 있다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하다는게 일치된 목소리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행법하에서도 적극적으로 법규를 해석하면 계좌추적이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만 당사자인 이 위원장이 수장으로 있는 금융감독원이 계좌추적을 맡는다면 결과에 대한 신뢰도를 놓고 또한차례 정치공방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금감원이 현대상선 회계장부에 대한 감리를 진행하고 있는만큼 검찰 등 사법당국에서 계좌추적을 맡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서울=연합뉴스) 정주호기자 joo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