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2000년 6월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천9백억원을 지원한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통상적인 사안은 아니다"고 4일 밝혔다. 엄 전 총재는 이날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산업은행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민주당 김효석 의원의 "당시 현대상선 당좌대월에 문제가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그는 또 "이근영 금융감독원장 취임 후 인사차 방문해 현대상선에 대한 지원을 정상적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하자 이 금감원장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상부의 강력한 지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엄 전총재는 이어 "상부가 누구냐"는 질의에 "한광옥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지난 6월 서해교전 때 우리 함정을 공격한 북한 함정이 새로운 무기로 무장됐다는 보도를 접하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만약 우리가 지원한 돈으로 무장한 함정에 우리 장병들이 공격당하는 일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금감위 국감에서의 증언과 관련,"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 '산은 대출금은 만져 보지도 못했으니 정부가 대신 갚아야 한다'는 주장을 2000년 9월 청와대 회의와 김보현 국가정보원 3차장에게 보고한 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며 재차 확인했다. 이와 관련,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3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출에 간여하지도 않았으며 문제의 돈은 북한으로 가지 않았다"며 "(미국방문) 일정을 마친 뒤 10일께 귀국해 증인이 필요하다면 하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4천억원을 계열사 주식매입에 사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면서 "자금 사정이 나빠 자구계획으로 썼다"며 상선과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 해결에 사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금강산 사업 등으로 적자가 누적돼 현대상선의 상황이 극히 좋지 않아 빚을 갚는 데 투입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돈흐름을 잘 아는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과 미국에서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이근영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재경위 국감에 출석,4천억원 등의 사용처에 대해 "현대의 다른 계열사 정리 및 구조조정과 관련한 출자 등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2000년말 기준으로 현대상선은 자산 7조4천억원 규모의 세계 유수 회사로 (4천억원이) 거액대출이라고 보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차병석·김병일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