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동안 음악 출판의 외길을 걸었던 박신준(朴信埈) 세광음악출판사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박 회장은 1917년 평남 중화에서 태어나 안주중학교를 졸업하고 1ㆍ4후퇴 때 월남한 뒤 잠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피란지인 대구에서 53년 2월 세광출판사를 설립, 대중가요집을 만들어 보급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상처 속에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유행가를 따라 부르는 것 외에 아무 오락수단이 없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가요를 배우고 싶어도 가사와 곡을 제대로 몰라 애먹는 것을 보고 노래책을 내기로 작정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그러나 당시엔 '말이 출판이지 몇백 권 찍어 전국 서점을 장돌뱅이처럼 돌며 팔던 보따리장수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출판문화' 2000년 2월호) 66년 월간 '가요생활'을 창간했고, 70년대에 들어서선 기타 코드를 곁들인 '세광애창곡집'을 내놨다. 70년대에 10∼20대를 보낸 사람치고 세광의 기타 교본과 대중가요집을 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 당시의 가요집 붐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어 70년대 후반 국내에 피아노가 보급되자 바이엘, 체르니 등 서양클래식음악 교본으로 영역을 넓혔다. 84년 세광음악출판사로 사명을 바꾼 뒤 88∼89년엔 중학교와 고등학교 음악교과서를 만들었고 97년엔 '세광음악신문'을 창간하는 등 음악 출판에만 매달렸다. 그간 내놓은 책만 해도 '우리 노래 대전집' 등 가요ㆍ가곡집부터 '피아노전집' '죽파가야금곡집' 등 악보, '국악대사전' '표준음악사전' 등 사전, '한국음악사' '음악기초론' '현대화성론' 등 이론서까지 2천종이 넘는다. 평소 노래를 잘 안불러 가족조차 '아리랑' 외엔 들어본 적이 없다지만 가요계 인사들과 교분이 두터워 64년 6월 손목인씨를 중심으로 한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창립을 도왔다. 또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국악관련 악보를 출판하고, 도산기념관 건립기금을 내는 등 소리나지 않게 활동했다. 누가 뭐래도 한길만 고집, 음악 출판의 1인자로 평가받게 돼 다행이라며 그간 수집한 자료를 모아 음악박물관을 세우고 싶다던 박 회장의 꿈이 사후에나마 이뤄지기를 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