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산지 가격이 바닥권을 맴돌고 있다. 돼지 사육두수가 사상 처음으로 9백만마리를 돌파,공급 물량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매가격은 오히려 지난달에 비해 오르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따라 산지의 축산농가와 소비자 모두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관련 부처인 농림부와 농협중앙회 등이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당장 가격이 제자리를 찾을 가능성은 높지않은 실정이다. ◆산지가격은 원가 밑돌아=산지의 어미돼지(1백㎏) 가격은 13만1천원. 지난달 말 12만6천원선을 유지하다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작년 말 18만원을 넘어섰던 것과 비교하면 30% 정도 떨어진 가격이다. 농림부에서 책정한 양돈농가의 어미돼지 마리당 생산비가 15만∼16만원선임을 고려하면 양돈농가는 '본전'도 못건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산지가격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공급과잉 때문이라고 말한다. 농협중앙회 양돈수급안정위 정종대 차장은 "일본수출에 대한 기대감으로 돼지 사육 두수를 대폭 늘렸으나 지난 5월 초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수출길이 막혀 국내에 물량이 넘치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는 "계절적으로도 9,10월이 돼지 출하가 몰리는 시점이기 때문에 낙폭이 더 컸다"고 덧붙였다. ◆소매가격은 요지부동=산지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소비자가 피부로 느끼는 소매가격은 큰 차이가 없다. 농협이 제공하는 가격정보에 따르면 지난 8월 5백g당 평균 4천8백70원에 거래되던 돼지고기 소매가격은 10월2일 현재 4천9백20원으로 소폭 올랐다. 4천4백60원 수준에 거래되던 지난해 말보다는 5백원 가까이 올랐다. 대형 소매점의 축산물 담당자들은 삼겹살과 목살에 집중돼 있는 소비패턴 때문에 산지 돼지값과는 상관없이 소매 가격이 높다고 설명한다. 한 할인점의 축산물 바이어는 "1백㎏짜리 돼지에서 나오는 삼겹살과 목살은 15㎏ 정도"라며 "삼겹살과 목살 물량은 오히려 부족한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바이어는 "잘 팔리는 부위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유통마진을 최대한 챙기려는 육가공업체측의 고가정책도 돼지고기 값이 오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농협유통이 운영하는 하나로클럽의 축산물 바이어는 "대형 육가공업체들이 수출기대감으로 등심과 뒷다리 부위를 대량으로 샀다가 구제역 여파로 큰 손해를 봤다"며 "이들 업체가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고가정책을 펴는 바람에 돼지고기 값이 오르게 됐다"고 말했다. ◆전망과 대책=농협과 대한양돈협회 등 양돈관련 기관들은 육가공업체들에 여러차례 공문을 보내 돼지고기 소비 촉진을 위해 소매가격을 인하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농협유통의 하나로클럽이 돼지고기 가격을 10% 내리는 등 대형 할인점들을 중심으로 가격인하 움직임이 일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는 않고 있다. 낮은 산지가격에 대한 대책 마련도 분주하다. 농협과 대한양돈협회 등이 참여해 발족한 '양돈수급안정위원회'는 지난달 12일 농림부에 삼겹살과 목살을 제외한 비선호 부위 수매를 지원해달라고 건의한 상태다. 농림부는 양돈수급안정위의 제안을 받아들여 육가공업체들에 무이자로 돈을 빌려줘 자율적으로 물량수매가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