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중인 박승 한은 총재가 28일 워싱턴 주재 한국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지던중 '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절하)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주장을 불쑥 내놔 관심을 끌고 있다. "선진국으로 가기위해서는 필수적"이며 "1년 정도의 예고기간을 거쳐 공개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10만원짜리 고액권 발행 문제는 디노미네이션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레 해결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발언을 접하면서 우선 화폐단위 절하 문제가 왜 이 시점에 갑작스레 불거져 나왔는지 또 한은이 이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사전검토를 거쳤는지 그것부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디노미네이션은 이론적으로야 화폐의 표시단위를 바꾸는데 불과하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주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부와는 사전 협의가 있었는지도 알고 싶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주장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2차대전 이후 주요국의 디노미네이션 사례를 보면 프랑스(60년)를 제외하면 선진국에서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없다. 남아공,소련,인도네시아 등이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했고 브라질이 67년 이후 세차례,아르헨티나가 70년 이후 세차례등 중남미 국가들이 초인플레이션을 잡자는 목적으로 여러차례의 화폐단위 절하를 단행했을 뿐이었다. 디노미네이션은 선진국이 아니라 후진국의 전유물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53년과 62년 두번 실시되었으나 모두 인플레를 억제하려는 목적에서 또는 퇴장 자금을 산업자금으로 끌어내려는 비상조치의 하나로 단행됐었다. 디노미네이션은 물론 원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등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따져봐도 지금 시점에서 표시단위를 바꾸어야할 현실적인 소요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1달러=1원'이 된다고 우리경제가 미국과 대등해 지는 것도 아니다. 화폐단위 변경은 그 자체로 엄청난 비용을 초래할 뿐더러 경제 주체들에 적지않은 혼란을 조성하게 마련이다. 중앙은행 총재가 주요 경제이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갖는 무게를 생각한다면 의견표명은 언제나 최소한에 그치는 것이 좋고 또 개인적인 의견과 한은의 공식입장이 조화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 총재의 디노미네이션 발언은 그의 강북개발론과 더불어 너무도 앞서나갔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공연한 평지풍파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