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서로를 잘 모른다. 얼굴을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매달 새로운 광고로 서로를 만난다. 자신들은 크게 의식하지 않지만 주위에선 광고를 비교하기도 한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대홍기획의 이봉재(41) CD(크레에이티브 디렉터)와 레오버넷코리아의 최혜정(41) CD.패스트푸드 업계의 영원한 맞수인 롯데리아와 맥도날드가 매달 선보이는 TV광고 제작을 총괄하는 "사령탑"들이다. 매달초 새 광고가 전파를 타면 이들은 쉴틈도 없이 다음편 작업에 몰입한다. 기획회의 제작회의 촬영 편집 녹음 등을 거치면 한달이 금새 지나가 버린다. 벌써 3년째 매달 피말리는 광고전을 벌이고 있다. "비교되는 것이야 어쩔수 없지만 우리 브랜드의 길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상대편이 내놓은 "작품"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오직 크리에이티브로만 광고를 평가하고 평가받고 싶어하는 광고인다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같은 패스트푸드 광고지만 두 사람이 전하는 "우리 광고"엔 차이가 있다. "롯데리아는 거의 매달 새로운 판촉행사를 벌이고 가끔 신제품도 내놓죠.한달 단위의 프로모션이 많아 이미 잘 알려진 빅모델을 광고에 투입해 유행어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합니다." 지난 3년간 롯데리아 광고를 30편 넘게 제작한 이봉재 CD가 그동안 개그맨 남희석,탤런트 양미라 등 낯익은 얼굴들을 자주 등장시킨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원로 탤런트 신구씨를 모델로 지난달초 선보인 "노인과 바다"편은 이 CD의 전략이 그대로 들어 맞은 결정판."니들이 게 맛을 알아"라는 대사는 "니들이 개 맛을 알아" 등으로 변형돼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크랩버거가 출시 한달반만에 5백50만개나 팔린 것도 광고의 힘이 컸다는 평가다. 이 CD는 "광고를 보고 한동안 패스트푸드를 멀리 했던 사람들이 '도대체 뭐길래'라는 생각으로 매장을 다시 찾는다고 한다"며 "그 정도면 광고는 성공한 셈이고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게맛'이 '개맛'으로 변형돼 입에 오르내릴 것을 예상했다"면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외국에서 개고기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도 있다는 점까지 고려했다"고 귀띔했다. 2000년초부터 맥도날드 광고와 사랑에 빠져 지금까지 20여편을 제작한 최혜경 CD는 '생활속의 소재(slice of life)'를 강조한다. "생활속에서 맥도날드 제품 때문에 벌어질 수도 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제품이나 프로모션을 알리는 것을 광고 제작의 원칙으로 삼고 있죠."**가 나오는 광고 봤니"보다는 "맥도날드 광고 봤니"라는 말이 들려야 합니다. 그래서 빅모델 보다는 평범한 모델을 더 선호하는 것이죠" 이런 그의 생각은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목숨걸지 마세요' 시리즈 광고에 그대로 배어 있다. "버스"편,"사장님"편,"성당"편 등에서 몰래 후렌치후라이와 햄버거를 훔쳐 먹다가 들키는 장면이나 "집으로"편에서 무명의 할머니가 햄버거를 잔뜩 사들고 손주들을 찾아가는 내용은 모두 이런 전략에서 비롯된 것들. 버스편은 지난해 칸 국제 광고제에서 "심플한 아이디어에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란 평가를 받으며 은상을 받았다. 이후 광고는 대만 홍콩 중국 싱가포르 등으로 수출돼 현지에서도 전파를 탔다. 최 CD는 "맥도날드 광고를 거듭할수록 욕심이 생긴다"며 "매달 전세계 각국에서 쏟아지는 1백편이 넘는 맥도날드 광고들 가운데 크리에이티브에서 앞선 광고를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각자의 길을 걸으며 알게 모르게 경쟁하는 이 CD와 최 CD는 이달에도 눈코뜰새 없이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10월과 11월에 내보낼 새로운 광고 때문이다. 이 CD는 신제품 출시에 맞춰 신구씨의 바통을 이어 탤런트 노주현씨가 망가지는 광고 제작을 이미 끝냈다. 최 CD도 평범한 중학생 아이들이 나오는 새 광고가 전파를 타는 10월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