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가장 큰 경쟁상대는 어디일까. 은행마다 다를 것인가. 우량은행은 우량은행끼리,공적자금이 투입된 곳은 그런 곳끼리 경쟁상대로 의식할지 모르겠다. 상위권에 드는 곳은 다른 금융권의 우량회사를 경쟁 대상으로 꼽을 수도 있겠다. 예컨대 대형 생명보험사라든가,성장세를 타는 대형 증권사들을 경쟁 상대로 여기는 은행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 주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발언은 다소 다르게 들렸다. 그는 "앞으로 은행의 큰 경쟁상대는 통신회사"라고 말했다. 서울시립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수재의연금 모금을 사례로 들면서 한 주장이다. 통신회사의 자동응답시스템(ARS)에 전화 한 통화로 의연금이 바로 결제되니 은행의 일이 없어진다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이런 유의 결제시스템 연구를 위해 핀란드의 노키아로 은행직원을 보내 연구토록 했다고 밝혔다. 은행의 상대가 은행도,여타 금융권도 아닌 통신업계라는 지적이 관심을 끈다. 각종 지급 결제에 따른 수수료 수입이 은행 수익구조에서 비중이 커져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행장의 말에 수긍이 간다. 반면 기업은행과 이동통신회사인 KTF의 최근 제휴는 다소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업은행은 KTF 이용자가 휴대폰으로 1백만원까지 현금인출이 가능하도록 하면서 이용자에게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위치까지 알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잠재적 경쟁 상대인 통신회사가 은행 업무에 새로운 차원을 가능토록 해 준 셈이다. 기업과 금융의 비즈니스 환경이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수익을 내는 것이 일차 목표인 경영에는 적도,동지도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경쟁자가 동시에 전략적 동반자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도 시사한다. 말 그대로 합종연횡 시대가 됐다. 1백50조원의 공적자금 덕분에 살아남은 금융회사들,그 자금의 혜택으로 회사문을 닫지 않은 한계기업들,그리고 영원히 경쟁자는 없는 공무원과 일부 공기업들 모두가 한번쯤은 생각해 볼 화두가 아닐까. 이미 출발 신호가 울린 무한경쟁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허원순 경제부 정책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