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공영제 확대를 골자로 한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선관위가 각계 의견을 수렴해 준비한 개혁안이지만,입법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핵심 쟁점은 선거공영제의 경제적 타당성이다. 한국정치를 고비용 정치로 인식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선거비용은 경제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관위는 선거공영제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정확한 자료를 갖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거시경제 차원에서 중요한 것은 대선자금의 실제 규모다. 선거공영제를 포함한 선관위 개혁안을 실시하면,비공식 대선 비용이 현격히 줄어든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 비공식 비용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구체적 설명없이 공식비용을 일부 절감한다는 내용의 홍보전략으로는 설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에 경제논리가 필요한 두번째 이유는 기업 재정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선 이번 개혁안이 부담을 얼마나 덜어주는지가 관심사다. 대선 관련 기업 기부의 통로가 되어왔던 중앙당후원회의 모금 규모가 축소되는 등 선관위안은 기업에 유리한 조항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후원회 등 정당이 우회적으로 기업의 기부를 요구할 수 있는 통로는 남아있는 것이 문제다. 이왕 사적기부를 제한하는 선거공영제를 확대한다면 차제에 기업의 정치자금 기부 자체를 금지하는 것도 부담을 덜어 주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선거공영제도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서도 경제논리를 보다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다. 시장실패 이론으로 선거공영제를 설명하면,정부가 정치자금 시장에 개입하는 이유는 '시장이 바람직한 선거자금,즉 일반 유권자의 소액기부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 개입의 목표도 국고보조 자체가 아니라,소액기부의 유인에 두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 선거비용을 국고에서 지원하지만,경선비용에 대한 사후 보전액수는 후보자의 소액모금 규모에 따라 결정한다. 우리도 후보자에 대한 유권자의 소액 기부를 허용해 국고보조금을 소액 모금 성과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경제논리는 또한 선거공영제를 경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것을 요구한다. 선거공영제로 인해 정당간 경쟁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당간 경쟁은 두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기존정당과 신규정당 사이의 경쟁이다. 과거 선거 득표율에 따라 보조금을 배분하면 선거공영제는 과거 실적이 없는 신규정당에 불리하다. 이번 개정의견이 과거 선거가 아닌,당해 선거 득표율을 지원기준으로 삼은 것도 기존정당과 신규정당 사이의 경쟁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결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선관위안은 정당경쟁의 두번째 유형인 기존정당 사이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선관위가 제안한 선거공영제 하에서는 정당들이 일정한 액수를 효율적으로 지출하는 경쟁은 하게 되지만,보다 많은 지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어렵게 된다. 정당간의 건전한 모금 경쟁을 유도하는 방안으로 선거비용과 정당비용을 엄격히 구분해 정당비용 조달을 위한 중앙당후원회 모금의 확대를 거론할 수 있다. 선관위 개정안은 또 정당 내부의 경쟁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현재 한국 정당의 현실은 당권 세력이 지원하는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선거공영제를 경선에까지 확대해 일정 수준의 지지를 얻은 경선 후보자가 적절한 수준의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선 비용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부담하든지 경선비용을 경선 후에 일부 보전해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경제는 주기적으로 심각한 선거후유증을 경험해 왔다. 이러한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민주적이면서도 경제적인 선거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선거개혁을 함에 있어 경제논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jrmo1961@yahoo.co.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