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가 발생한지 1년이 됐다. 우선 3천명이 넘는 희생자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에게 다시한번 깊은 애도와 위로를 드리고자 한다. 정치적 이념 따위와는 상관없이 생업의 현장에서 희생됐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다시는 그같은 불행한 일이 재발하지 않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그날' 이후 많은 정세 변화들이 있었지만 불행히도 모든 것이 아직 혼돈 속에 있을 뿐 명료해진 것은 별로 없다. 테러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은 아직 종적이 오리무중이고 탄저균에 이은 제2,제3의 테러 가능성도 수시로 거론되는 상황이다. 하나 분명한 것은 대(對)테러전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종료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란 이라크 북한이 새롭게 '악의 축' 국가로 지목됐고 이제 테러 1주년을 맞아 미국은 대(對)이라크 공격을 카운트다운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 초래할지도 모르는 경제적 파장이다. 당장 국제 원유가격이 급등세를 보이고 있고 세계 금융시장은 초긴장 상태다. '전쟁은 정책의 연장'이라는 말도 있지만 미국의 세계전략과 한국의 이해관계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국으로서는 테러와의 전쟁을 확실히 매듭지어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는 세계경제의 혼란은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경제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걸프전 당시와는 양상이 다를 것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로서는 상황 전개에 따른 장단기 대응책을 미리부터 치밀하게 세워두는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더욱 걱정스런 점은 북한이 '악의 축'국가의 하나로 지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을 방문키로 하고 남북대화가 모처럼 재개되었다고는 하지만 북한의 태도여하에 따라 자칫 테러와의 전쟁이 엉뚱한 곳으로 옮겨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최근들어 미국이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는 있다지만 아직 사태 전개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테러 전쟁이 한반도로 비화되어서 안된다는 것은 두말이 필요없다. 북한이 스스로를 국제사회에 열어보이도록 독려하고 유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적 책무의 하나다. 한반도를 에워싼 국제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 시기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전투구식 정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국내정치 상황은 여간 걱정스런 일이 아니다. 정치권은 국제정세와 세계경제의 긴박성을 제대로 인식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