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이 달라진 곳 중 하나가 은행이다. 공과금 수납을 기피하는가 하면 소액예금엔 이자를 주지 않고 영업외 시간의 현금지급기 이용엔 수수료를 부과한다. 반면 우수고객에겐 각종 수수료를 받지 않고 일을 빨리 처리해주고 이자도 차등 지급한다. 이런 변화는 은행에 이익을 주는 고객은 전체의 20%에 불과하고 은행 가계수신의 대부분이 소수 거액예금자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조치다. 하나은행의 경우 전체 고객의 0.8%인 4만3천여명이 맡긴 돈이 가계수신 총액의 70%가 넘는다고 할 정도다. 고액예금자 공략이 가계수신 규모를 좌우한다는 얘기다. 은행들이 최근 본격적인 '프라이빗 뱅킹(PB:Private Banking)'에 나선 것도 이런 까닭일 것이다. PB는 고액예금자에게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PB고객에겐 예금 관리부터 부동산·증권 상담같은 재테크,세무 외환 법률 자문까지 1대1 서비스를 해준다. 비밀유지와 안전 위주의 스위스은행형과 공격적 재테크형인 미국형으로 나눠지는데 국내 은행은 보통 혼합형을 취한다고 한다. 서울 강남에 PB센터를 만든 신한ㆍ조흥은행의 기준은 예금 10억원 이상,일찍이 PB서비스를 시작한 하나은행의 기준은 5억원 이상, 씨티은행의 대상은 30억원(세계 기준 3백만달러)이상이다. PB서비스의 핵심은 자산관리지만 고액예금자의 경우 거래은행을 잘 바꾸지 않기 때문에 가격경쟁력보다 차별화된 서비스에 따른 비가격 경쟁력이 중시된다. 신한은행이 사용액 통합한도 1억원,현금서비스 한도 3천만원에 가족행사 때 최고급 승용차 무료지원 등을 내세운 '신한PB플래티넘카드'를 발급한 것이나, 조흥은행이 미국의 존스홉킨스 병원 등과 제휴해 해외 치료 등 종합적인 의료서비스를 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그같은 차별화전략의 일종인 셈이다. 부자마케팅은 모든 부문의 추세다. PB도 그 일환인 만큼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기왕이면 소액 예금자를 위한 작은 서비스도 함께 개발해주면 안되는 걸까. 면세혜택도 모두 없어질지 모른다는데 말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